"성폭행, 왕따, 셔틀…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 숱하게 만나게 되는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폭력들. 하지만 정작 피해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에 긴긴 세월 어둠의 터널 속에 갇혀 살아가는 반면 가해자는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다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 견디기 힘든 모순덩어리 사회에서 과연 정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지켜야 할까.
최근 성폭력과 학교폭력을 서로 다른 시선에서 바라본 세 편의 영화가 잇따라 선보여이거나 예정에 있어 눈길을 끈다. 먼저 17일 개봉을 앞둔 '한공주'는 2004년 14세 여중생이 고등학생 44명에게 집단 성폭행당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밀양 여중생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피해자인 한공주가 겪었던 비극을 한꺼번에 스크린에 쏟아내지 않는다. 대신 피해자가 아파할 때마다 그날의 비극을 하나 둘씩 꺼내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맞춰진 퍼즐. 고통이다.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 왜 계속 도망쳐야 해요" 라고 울부짖는 한공주의 피맺힌 외침처럼 영화는 피해자임에도 숨죽여야 하는 비정상적인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관객에게 묻는다.
'한공주'가 피해자의 고통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난 10일 개봉한 '방황하는 칼날'은 성폭력에 유난히 관대한 대한민국의 사법제도에 질문을 던진다. 딸이 성폭행 당하고 죽자 가해 학생을 찾아 복수에 나서는 아버지. 비록 자극적인 소재를 상업영화로 포장했지만 법을 믿지 못하고 또다른 폭력에 의존해야 하는 불편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지난달 13일 개봉한 '우아한 거짓말'은 '완득이'를 집필한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왕따' '은따'를 당하다 자살한 여중생이 가해 친구를 용서한다는 다소 동화 같은 이야기다. 현실은 잔혹동화임에도 영화가 내리는 결론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착하고 순수하다. 하지만 가해자도 왕따 당사자도 모두 피해자라는 식의 메시지는 적어도 날로 악랄해지고 흉악해지는 학교폭력 앞에서 무기력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