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외교] 눈치보기·과거사에 갇혀… 제 목소리 못내고 갈팡질팡

미중 사이 균형외교 이제 한계… 대북·대일 원칙외교 피로 누적
국익 우선 단계별 전략 수립… 외세 휘둘림 없는 외교 펼쳐야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의 '일등 업적'으로 꼽혀온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의 균형외교, 북한과 일본에 대해서는 원칙외교로 대표되는 기존 외교안보정책의 틀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AIIB 논란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공식적인 입장으로 내놓은 '전략적 모호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리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입장을 내놓는 순간 이미 우리의 '전략적 모호성'을 사라지고 '눈치 보기'만 남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일·대북관계에서는 박근혜 정부 3년 차를 맞은 올해가 광복 70주년, 분단 및 한일관계 정상화 5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도,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정부 관계자,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김형기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장은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주요 정책들을 제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부터라도 우리 정부가 외부 정세에 휘둘림 없이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국가이익의 우선순위에 따라 단계별로 외교전략을 수립해 적절한 외교수단을 동원하며 외교활동의 전 과정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자기주도외교를 전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의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에 편승해 확실하게 미국 편에 서고 있는 일본 아베 정부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내세우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 우리 정부와 대비를 이룬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취임 이후 미국과의 동맹관계 강화를 외교정책 중 최우선순위로 추진해왔다. 이러한 외교정책 아래 일본은 미국과의 안보동맹 강화 및 방위 부담 증대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힘을 등에 업은 소맹주로서의 역할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의 묵인하에 '아베노믹스'를 통한 가파른 엔화 약세 및 '보통국가화'를 위한 개헌 추진 등 자국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평가를 얻는다.

미일동맹의 강화 속에서 사드 한국 배치는 한중관계의 분기점이자 동북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구도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사드가 국내에 배치되면 중국은 한국 대신 북한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러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는 동북아에서 신냉전구도를 형성하면서 결국 한중관계·남북관계에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최근 중국은 한국을 방문한 류젠차오 외교부 부장조리(차관급)의 발언 등 다양한 외교 경로를 통해 사드 한국 배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21일 예정된 한중 외교장관회의와 한중일 외교장관의 박근혜 대통령 예방에서도 중국은 이러한 의견을 전달하며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고민도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AIIB·사드 논란 속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혔던 '외교·국제관계'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 이유로 외교·국제관계를 꼽은 응답 비율이 13일(30%)보다 9%포인트 하락한 21%를 기록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