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쓴 글을 다시 돌아보며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후회로 가슴을 치는 것은, 글쟁이 시인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나 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인 저자는 옛 글을 묶어 이 산문집을 내며 "같은 꼭지 안에서 같은 단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수없이 표현을 바꾸고 다듬었다"며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헛수고를 했는지, 하도 자판을 두드려 나중에는 손목의 인대가 파열돼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사실 이 책은 2000년에 같은 제목으로 첫 선을 보였다가 절판됐었다. 이후 2002년부터 최근까지의 글 중에 '생활의 냄새'가 진한 글들'만을 저자가 고르고 추가해 이번에 다시 펴 냈다. 압축된 시구로 정신을 뒤흔드는 시인의 속내가 궁금하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더욱이 문단과 언론에 스스로를 잘 노출하시키지 않는 시인의 내밀하고 소소한 일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저자는 "괴로울 때나 기쁠 때나 늘 나와 함께 했던 일기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다. 그가 결코 날 실망시키거나 배반하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134쪽)고 얘기한다. 상 없어도 고된 퇴고의 과정을 감내하는 작가답게 원칙적으로 독자가 자기 자신뿐인 일기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길지 않은 에세이 한 편에도 생각과 생활, 상념과 이념을 탁월하게 버무려 낸다. 그는 영어식 조어의 인사말인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소리에 '식용유 한 병을 통째로 삼킨 듯 느끼한 불쾌감'(13쪽)이 일었다고 한다. 겉은 한국말인데 속은 영어같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밥 먹었냐' '복 받으세요' 등의 우리말 인사를 찾아 쓰자며 '글쟁이다운' 한국말 사랑을 털어 놓는다. 그런가 하면 삶을 관조하는 '관심있는 맑은 눈'은 산 지 15년이 지난 허름한 셔츠의 단추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낸다. '단추들이 조금도 헐거워지지 않은 채 처음 달렸던 자리에 그대로 완강하게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숱하게 빨았을 텐데… 내겐 그 낡고 허름한 천에 붙어 있는 단추들이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그리고 어느 예술작품 못지않게 그 물건이 신비로워 보였다'(108쪽). 저자의 순간적인 단상은 독자들에게 '나는 어떤 단추인가'를 반추하게 한다. 1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