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여야 합의로 처리될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이 이른바 독소조항으로 지목하고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조항을 폐기하는 재재협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겠다며 강력 저지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여야 원내대표 간에 이뤄진 비공개회의에서 아무런 합의가 도출되지 못한 데 이어 여야 및 정부가 참여하는 ISD 관련 끝장토론도 무산됐다.
그러나 야권이 한미 FTA 비준에 대한 반대 명분으로 ISD를 트집 잡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동안 주장해온 농업 부문의 피해보상 등과 관련한 대책이 여야 간 합의로 마련되자 이제 ISD를 문제 삼고 나섰기 때문이다. FTA 반대를 위한 꼬투리 잡기인 셈이다.
ISD는 투자자의 재산권이 침해됐을 때 정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야당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만약 손해를 입은 미국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제소할 경우 우리 정부의 정책권한이 상실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내 중소기업 보호정책 등이 미국 투자자들에 의해 방해 받을 수 있는 이 같은 독소조항은 재재협상을 통해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는 게 반대 명분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억지주장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ISD가 발동되려면 타당성이 결여된 불합리한 정부 규제가 외국기업에만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손실에 대한 배상이 없는 등 여러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분쟁 가능성이 큰 의료ㆍ토지 등 공공정책은 ISD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만약 ISD가 독소조항이라면 전세계 2,500여개 국제협정이 ISD를 채택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가 체결하고 있는 85개의 투자협정 중 81개가 ISD를 인정하고 있다. ISD 규정을 통해 우리의 해외투자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때 작성된 한미 FTA 평가서에서 ISD가 제도 선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야당은 더 이상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 국익 차원에서 한미 FTA 비준안이 조기에 통과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디딤돌이 될 FTA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할 경우 오히려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