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산책] 12월을 보내며

문훈숙(유니버설발레단단장)

[토요산책] 12월을 보내며 문훈숙(유니버설발레단단장) 어느덧 12월이다. 그리고 어느새 발레 ‘호두까기인형’을 만들어가는 손길로 분주하다. 필자의 송년은 늘 ‘호두까기인형’의 음악으로 시작된다. 매년 연말이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그 멜로디에는 ‘아, 한해가 저물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꼬리처럼 따른다. 한해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후회되는 일은 없는지, 꼭 마무리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지난 시간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라는 표현만큼 송년을 정확히 표현해내는 단어는 없는 듯하다. 올해 또한 그랬다. 필자가 단장으로 재직하는 유니버설발레단을 운영하는 데서 빚어지는 크고 작은 일에서부터 아들ㆍ딸의 재롱과 투정을 받아주는 일,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들은 일상을 바쁘게 만들어줬다. 올해는 발레리나 문훈숙으로서의 춤에 대한 열정과 욕심을 버리고 발레단 운영에 전념하며 행정가 문훈숙으로 변신해온 한해였다. 30 여년간 발레리나로 훈련돼온 삶이 180도 바뀌었다. 낮과 밤이 교차되는 것도 모른 채 연습실 거울과 씨름했던 시간들 대신 분초를 아껴가며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들과 만나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시간 마주한 분들 모두가 행정가로서의 문훈숙을 받쳐주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알게 됐다. 특히 최근에 지인의 권유로 읽게 된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은 ‘홀로 있을수록 함께한다’는 가르침으로 생각과 삶의 변화를 줬다. 이 책은 무소유의 삶을 이야기해온 법정스님께서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지를 에세이로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혼자 산다는 의미’가 ‘타인을 외면하며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울타리를 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돌보고 배려하면서 사는 삶’임을 알려준다. 사람이 보다 높은 위치에 오를수록, 또 앞을 향해 달려갈수록 자신의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않게 된다. 필자 역시 그랬다. 하루를 느껴볼 새도 없이 밀려드는 격무와 각종 미팅들로 바쁘게 움직였다. 그 가운데 만난 이 책이 필자의 모든 생각을 멈추게 했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끊임없이 돌아가던 쳇바퀴를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필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특히 필자의 특별한 결혼,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때로는 부담스러웠다. 발레리나가 아닌 행정가로서 살아가는 지금의 일상으로 바뀌면서 마치 내 옷이 아닌 것처럼 무엇인가 어색하고 편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과 행동이 유니버설발레단이라는 거대조직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내성적인 성격을 사교적으로 바꾸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자 부담스럽던 시선들이 차츰 따뜻하게 여겨졌다. 그것은 비단 업무를 통해 만나는 분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연을 보러 오는 모든 관객들도 우리 발레단의 좋은 벗으로 느껴진다. 예전에 직접 무대에서 춤을 추던 때는 관객의 눈이 의식됐던 터라 무용수와 관객 사이의 적당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공연이 시작되면 객석 뒤에 서서 관객들과 함께 공연을 바라보고 함께 환희를 느끼고 함께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커튼콜은 어떻게 하면 좀더 재미있을지 등에 눈길이 간다. 필자 또한 아이를 키우는 터라 아이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아오신 부모님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는지 물어보게 된다. 이는 남들과 다른 삶이라고 생각했던 필자의 특별한 이야기들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마치 친구처럼, 가족처럼 다가와주는 그들을 통해 삶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송년이다. 한해 동안 필자를 바라봐주고 함께 이야기해줬던 사람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입력시간 : 2004-12-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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