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보게 하는 '누더기 얼굴'

전단지에 그린 세조… 재봉틀로 꿰맨 초상
서용선·윤지선 개인전 열려

서용선 '세조' /사진제공= 화이트블럭

윤지선 '누더기 얼굴' /사진제공=일우스페이스

얼굴은 많은 것을 함축한 동시에 표현한다. 그래서 '제 얼굴에 먹칠'처럼 얼굴을 망가뜨리는 것은 인격 모독과 맞먹는 '금지된 행위'였다. 하지만 현대미술가들은 종종 얼굴에 대한 이 금기를 깨곤 한다. 사진 심리학자인 신수진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교수는 "현실에 무뎌지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금기에 대한 도전은 예술의 가장 큰 미덕"이라며 "끔찍한 얼굴을 통해 각자 스스로의 자화상을 고찰할 기회"라고 말한다.

◇왕의 얼굴에 도전=용안(龍顔)은 범접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조선 왕조에서는 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그린 '어진 화가'의 영예는 대대손손 전해졌다. 그러나 화가 서용선(63)은 모독에 가까운 '발칙함'으로 세조(1417~1468)를 그렸다. 지난해 뉴욕에 머무르던 작가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AT&T 광고 전단지를 주웠다. 작가는 "낯선 글자(영어)와 조선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모습이 만나는 것은 묘한 자극"이라며 커다란 전단지 위에 세조를 그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전날 먹은 신라면 봉지를 뒤집어 붙인 자리에 그렸다. 곤룡포 색 붉은 배경 속에 녹색 옷을 입고 앉은 세조. 눈은 권력욕으로 이글거리지만 동생과 조카를 내몰고 차지한 왕위에 대한 불안감은 회색과 붉은색이 교차하는 낯빛으로 표현됐다. 버려진 광고지와 야식용 라면봉지 같은 '불필요한 소비'와 세조가 휘두른 '권력 남용'의 역사가 교차돼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제2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인 서용선의 개인전 '역사적 상상-서용선의 단종실록'전이 파주 헤이리의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한창이다. 그의 그림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서양 역사화나 권력자 입장의 기록적 성격이 강한 동양 역사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고증된 역사를 현대인의 입장에서 곱씹어 그린 '상상 역사화'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갤러리로 운영되던 화이트블럭이 미술관으로 전환된 첫 전시로 7월 27일까지 열린다. (031)992-4400

◇재봉틀로 박아버린 얼굴=작가 윤지선(39)은 자신의 얼굴 사진을 찍은 뒤 눈만 남긴 채 온통 재봉틀로 '박아버린다'. 입을 꿰매버리거나 눈에서 뻗어나온 붉은 실이 코와 이어지고 머리카락으로 연결돼 또 다른 자신에게 닿는 등 기괴하다. 작가는 "한 이란의 인권운동가가 본국송환에 거부하는 시위로 자신의 눈과 입을 꿰맨 사진을 본 충격 이후 2007년부터 '누더기 얼굴' 시리즈를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남의 얼굴 사진으로 작업했더니 불쾌와 거부감을 보여 아예 내 얼굴로만 작업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얼굴 사진을 바늘로 찌르고 실로 꿰매는 과정은 다분히 가학적이다. 그러나 하루 10시간 이상, 자신의 얼굴을 망가뜨리는 과정은 어느덧 자아 성찰의 시간이 됐고, 관객은 눈만 남은 그 누더기 얼굴을 보며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윤 작가는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의 제 4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주목할 작가' 출판 부문 수상자로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 독일 핫체칸츠에서 단독 사진집이 출간된다. 전시는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 1층 일우스페이스에서 7월2일까지 열린다.(02)753-6502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