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담배회사에 대한 흡연 피해 손해배상청구 방침을 확정했다.
건보공단은 24일 오후5시 서울 마포구 염리동 본사에서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세번째 안건으로 올라온 공단 법무지원실의 '흡연 피해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안'을 의결했다. 흡연 때문에 병을 앓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들어간 공단 부담 진료비에 대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는 내용으로 소송 대상과 규모, 제소 시기는 이사장에게 위임했다. 이로써 공공기관이 벌이는 국내 첫 담배 소송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공단은 앞으로 국내 담배 판매량 규모를 고려해 KT&G 등 국내외 담배회사 가운데 소송 대상을 확정할 예정이다. 소송은 공단 안팎의 변호사로 구성된 공동소송대리인단이 맡는다.
이번 소송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오던 복지부는 이사회를 하루 앞둔 지난 23일 건보공단에 공문을 보내 담배회사 소송에 대한 안건을 '의결안건'이 아닌 '보고안건'으로 올릴 것을 주문했다. 공단의 담배 소송에 대한 취지와 입장에는 공감하지만 철저한 준비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지만 사실상 반대한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담배 소송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 뒤 "의결을 위해선 소송 대상과 소송액, 승소 가능성 등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논의안건에 포함돼야 하는데 부족해 보이므로 협의를 더 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공단의 담배 소송 확정이 다음 이사회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예상도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종대 건보공단 이사장의 소송 의지가 워낙 강한데다 공단도 담배로 인한 피해를 입증해 법정다툼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참석 이사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와 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시민·소비자 대표, 공단 이사장과 상임이사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된 이사 가운데 13명이 참석해 11명이 소송에 찬성했으며 기재부와 복지부 인사 2명만 반대표를 던졌다.
김 이사장은 이사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담배는 생명을 파괴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데다 의료비와 보험료 지출을 야기한다"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담배 폐해의 객관적 증거를 확보해 소송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 이사장은 본인의 블로그에 꾸준히 △담배 소송을 위한 공단의 역할 △국내외 소송 사례 △전문가 견해 등을 실으며 담배 소송에 대한 의지를 내보였다.
건보공단이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했지만 복지부와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하기는 어려운 만큼 소송 과정이 더디게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건강보험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흡연으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2011년 기준)은 1조7,000억원에 이른다. 건보공단은 우선 폐암과 후두암에 대한 소송부터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고등법원이 2011년 담배 소송 판결에서 '소세포암(폐암)과 편평세포암(후두암)은 흡연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게 근거다. 2003~2012년 폐암(소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 치료에 들어간 건강보험료를 고려할 때 소송액은 130억~3,326억원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