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미국의 출구전략 우려가 제기된 후 꽉 막혔던 국내 회사채 시장이 우량채를 중심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위축됐던 투자수요가 확인된 만큼 시장의 눈치를 보며 미뤄왔던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8월 중순 이후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1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ㆍ현대하이스코ㆍ두산ㆍ삼천리ㆍ하이트진로ㆍLG유플러스ㆍ삼성에버랜드 등 다수 기업이 회사채 발행을 결정했거나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AA)은 이달 중 5년물 또는 7년물 회사채를 약 1,000억원 규모로 발행한다. 다음달 돌아오는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일부 상환을 위한 것으로 14일 수요예측을 실시할 예정이다.
현대하이스코(AA-)도 이달 말 돌아오는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를 대비해 1,000억원어치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 중이다. 롯데케미칼(AA+)도 2년 만에 대규모 회사채 발행에 나선다. 총 4,000억원 규모로 3년ㆍ5년ㆍ7년물로 나눠 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삼성에버랜드(3,000억원), LG유플러스(2,000억원), 두산(1,000억원) 등 대규모 우량 회사채 발행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얼어붙은 회사채시장이 살아나는 것은 최근 LG전자ㆍKB금융지주 등의 회사채 발행이 크게 성공하면서부터다. 지난달 말 수요예측을 실시했던 LG전자는 기관투자가들이 대거 몰리며 당초 2,000억원을 계획했던 발행 물량을 4,000억원으로 두 배 늘렸다. 지난주 열린 KB금융지주의 회사채(3,500억원) 수요예측에는 7,700억원의 기관 자금이 몰렸다. 그 뒤를 이어 우리카드ㆍ롯데알미늄ㆍLG패션 등 AA급 회사채도 수요예측에 성공했다.
국내 회사채 발행시장은 지난 5월 이후 미국의 출구전략 우려가 확산되며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그 결과로 급격히 위축됐다. 지난 2~4월 5조원대에 이르던 월간 공모 회사채 발행 규모도 6~7월 2조7,000억원 수준으로 뚝 떨어지기도 했다. 전체 회사채 발행 물량에서 만기 물량을 뺀 회사채 순증가 규모도 플러스를 유지해오다 6월 이후 급감하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그러나 잇단 수요예측 흥행으로 투자 수요가 확인됨에 따라 시장 눈치를 보며 발행을 망설이던 기업들의 회사채 물량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져나오며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공모 회사채 발행 규모도 9월에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논란 이전인 지난 2~4월의 4조~5조원대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은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5~7월 공모 회사채 발행이 저조함에 따라 8월 크레디트 스프레드(국고채 수익률-회사채 수익률)가 축소됐고 최근 LG전자의 수요예측 흥행 이후 회사채 발행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8월 중순 이후 발행 물량이 크게 늘며 9월에는 4조~5조원대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회사채시장의 투자수요는 아직까지 우량 회사채에 집중되고 있어 전체 회사채시장의 회복으로 보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특히 오는 9~10월 한화건설ㆍ롯데건설ㆍ두산건설ㆍ대우건설ㆍSK건설ㆍ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의 대규모 회사채 만기가 예정돼 있지만 업황이 크게 위축된 상태여서 회사채 발행이 여의치 않다.
한화건설은 최근 3년 만기 2,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서며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3개 기관 총 700억원이 신청해 미달됐고 수익률도 희망금리 상단에서 최종 결정됐다. 두산(A+)도 산업은행이 발행물량의 절반을 인수해가는 조건으로 회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김 연구원은 "신용등급 BBB 이하 건설사들의 경우 리테일 수요가 거의 없고 증권사들도 인수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정부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신청해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발행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마저도 조건이 까다로워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