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바둑영웅전] 꼭 좋다는 보장이 없어

제1보(1~17)



구리는 한국의 고수들 사이에 악명이 높아졌다. 그의 호연지기는 한국 기사들을 압도했다. 질 때 지더라도 그는 언제나 호쾌하고 과감했다. 종래의 중국 기사들에게 나타나던 공한증(恐韓症)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제전의 추첨에서 구리를 상대로 뽑게 되면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에잇. 손도 아니다." 송태곤이 어느 추첨식에서 내뱉은 말이었다. 제 손으로 구리를 뽑게 되자 최악의 카드를 뽑았다고 자기의 손을 원망한 것인데 결국 그 대국에서 송태곤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했다. 구리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상대가 있었다. 동갑인 이세돌. 중국리그에서는 구리가 1승을 기록했지만 삼성화재배 준결승에서 패한 바 있다. CSK배에서 각각 주장을 맡아 한판 격돌을 하게 되었다. 구리의 삼연성 포석이 서반의 이채였다. 평소에 별로 사용하지 않던 포석을 그가 들고나온 것은 상대인 이세돌을 기세로 압도해볼 의도로 보인다. 백14로는 그냥 16의 자리에 두는 것이 보통인데 이세돌은 수순을 슬쩍 비틀었다. 10분의 숙고 끝에 구리는 흑15로 일단 참아두었다. 그가 검토했던 것은 참고도1의 흑1이었다. 흑11까지 밀어붙이면 백은 12로 좌변을 키우고 흑은 13으로 눌러가는 바둑이 된다. 그러나 이 코스는 백보다 흑이 좀 부담스러운 진행이라고 보았다는 구리의 소감 피력이 있었다. 참고도2의 흑3으로 두는 방식도 구리가 고려했다고 한다. 그것이면 백은 4로 끼우는 바둑이 되고 백14까지가 예측되는데 역시 흑이 꼭 좋다는 보장이 없어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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