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디자인 트렌드 실종… 관람객 절반이나 뚝

■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가보니
유럽 경제위기 여파… 업체 투자위축 뚜렷
M&A물량 쏟아지고 문닫는 상점 잇따라

지난 9일(현지시간)부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막한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 전시장에서 참가 기업 관계자와 관람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경환기자

'아피따시(affittasi)'

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중앙역에서 20km 가량 떨어진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isaolni 2013)' 전시장 거리. 며칠째 구름만 가득 낀 하늘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데 시내 상점 곳곳에 걸린 '아피따시'라는 팻말이 도시를 더욱 우중충하게 수놓고 있었다.

'아피따시'는 이탈리아 말로 '세를 놓다'는 뜻이다. 한곳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는 것을 전통으로 여기는 이탈리아의 문화도 불경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셈. 평일인데도 오전부터 각 건물마다 문닫은 상점이 줄을 지어 있었다.

더욱이 밀라노는 공업지대가 위치해 있는 북부라서 이탈리아에서는 그나마 경제 여건이 좋은 지역이다. 이를 감안하면 경제가 훨씬 더 뒤처진 것으로 평가받는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할 수 밖에 없어 보였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가 더욱 악화되면서 6개월 전부터는 실직자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게 현지인들의 전언이다.

이탈리아에서 15년째 거주 중이라는 한 한국인은 "이탈리아 가게들은 보통 휴일에는 문을 웬만해서 안 여는데 최근 장사가 안 되다 보니 휴일에도 문을 여는 가게가 늘고 있다"며 "최근 6개월 사이 주변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이 속출하고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와 유럽의 극심한 경기침체 분위기는 밀라노 북쪽에 위치한 위성도시 로(Rho)의 '로 밀란 페어그라운즈' 전시장 에서 지난 9일부터 개막한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까지 그대로 강타했다. 올해로 52회째를 맞는 이 박람회는 독일 쾰른, 미국 하이포인트와 함께 세계 3대 가구 박람회로 꼽힌다.

매년 160여개 나라에서 30만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찾는 전시회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트렌드 변화에 보수적인 독일ㆍ북유럽 등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이탈리아는 제품 개발 사이클이 짧다는 점에서 가구 디자인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나라다.

오는 14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박람회에서는 총 2,500여개 가구ㆍ조명 관련 기업들이 참가했다. 국제 가구부자재전(the International Furnishing Accessories Exhibition)을 비롯,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조명전(Euroluce), 사무용 가구전(Salone Internazionale del Mobile), 젊은 디자이너 창작전(Salone Satellite) 등이 함께 열렸다. 박람회 주관업체인 코스밋의 클라우디오 루티 사장은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는 혁신의 대명사이며 분야별 새로운 상품을 미리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박람회를 둘러본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유럽 가구회사들이 예년보다 투자를 줄인 것이 눈에 띄어도 너무 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말로는 '미래의 인테리어', '혁신' 등을 주제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경기불황 탓에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시돼 있는 인테리어 구성도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데다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한 신제품의 숫자도 급감했다는 것. 또 비용을 아끼기 위해 기존 가죽 원재료를 천으로 바꾼 제품도 여럿 눈에 들어왔다. 터줏대감 회사 중 몇 곳은 이번 전시회 참여를 아예 포기하기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박람회 초반임에도 불구, 세계 각국에서 온 가구업계 관계자나 바이어 등 방문객들의 수는 예년에 비해 상당히 줄어든 분위기였다. 실제로 과거 700~800명에 달했던 한국측 가구업계 관계자 관람객 수도 올해 300~400명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제적인 행사의 열기까지 한풀 꺾인 셈이다. 여기에 가구제조 강국인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대부분의 국가 업체들이 최근 경영난에 허덕이면서 인수ㆍ합병(M&A) 시장에 하나 둘 쏟아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해외 유명 가구업체들의 제품이 넓은 전시장 곳곳을 채운 가운데 가전ㆍ조명제품을 전시한 삼성전자, LG전자 등 극소수의 국내 업체도 간혹 눈에 띄었다. 특히 젊은 디자이너 창작전에는 5개 국내팀이 참여, 한국의 디자인 제품을 알리고 있었다. 2011년에 이어 젊은 디자이너 창작전에 두번째로 참석해 국내 중소기업과 손잡고 제작한 다용도 탁자를 선보인 디자이너 노일훈 씨는 "이번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통해 제품 시판을 시작했다"며 "미국에서 온 바이어와 첫날부터 계약을 논의하는 등 방문객들의 반응이 괜찮다"고 전했다.

한국 전통 스타일의 가구 브랜드 '이든'을 선보인 현지 활동 디자이너 미키 정 씨는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는 트렌드를 좇는 곳이 아니라 트렌드를 창출하는 곳"이라며 "벌써 네번째 참석하다 보니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부스를 꾸몄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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