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바둑영웅전] 허리가 끊어지다

제4보(46~64)


왕밍완은 난투의 전문가이다. 일본의 품격주의 기사들과는 대조적으로 무식하게 밀어붙이고 야만적으로 덮친다. 그런 점에서는 한국의 청소년 기사들과 비슷하다. 그는 미지근한 수를 절대로 두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장쉬에게 정통으로 걸려 버렸다. 15분 동안 장고했으나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상식적으로 두자면 참고도1의 백1 이하 13으로 두어야 하는데 흑에게 14로 몰릴 때 대책이 없다. 곱게 이어주자니 너무도 굴욕이고 반발하면 패가 나는데 적당한 팻감이 없다. 백48은 일종의 교육책이다. 하변의 백돌 3점을 희생시키고 그 대신에 흑대마를 분단하여 공격하겠다는 구상인데 딱하게도 실효성은 다소 희박해 보인다. 백돌 3점은 확실하게 희생되는데 흑돌에 대한 공격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백54로 단속한 것은 발이 느려 보이지만 정수였다. 참고도2의 백1로 끊고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흑4로 따낼 때 팻감이 전혀 없는 것이다. 흑55로 잇게 된 수순을 보고 한국기원 검토실의 루이9단은 고개를 흔들었다. “거의 끝났어요. 백이 졌어요.” 옆에 있던 서봉수9단이 맞장구를 쳤다. “허리가 끊어진 형국이야. 본인방까지 된 친구가 오늘은 너무 망신을 당하는군.” 왕밍완은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억지로 하변 백 3점을 살리려 하면 못 살 것은 없지만 대세에 뒤진다. 그는 백58로 변신하여 좌하귀를 점령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 코스 역시 가시밭길이지만 어쨌든 다소 복잡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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