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일왕릉·귀무덤 … 한국인에는 아픈 상흔으로

교토 남쪽에 있는 메이지 일왕의 무덤. 우리에게는 '적'이지만 일본에서는 근대화를 달성한 '대제'로 칭송받는다.

교토가 1,000년 이상을 일본의 수도 역할을 한 것을 생각하면 당연히 적지 않은 한국 관련 유적이 있다. 불행했던 과거 역사에 비춰 우리에게 다소 부담이 되는 유적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새롭게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반추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살펴봐야 할 것들이다.

교토 남쪽 후시미모모야마노미사사기에는 메이지(1852~1912) 일왕의 무덤(정식명칭은 明治天皇 伏見桃山陵)이 있다. 무덤은 으리으리하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다소 비가 왔는데 입구에서 300여개의 계단을 올라간 후에야 무덤을 볼 수 있었다. 너른 평지에 야트막한 언덕을 배경으로 산 같은 무덤이 놓여 있다. 앞쪽에는 경비원이 기자를 노려보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침략의 원흉이지만 일본에서의 평가는 높아 '메이지 대제'로도 취급받는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나 엘리자베스 여왕의 수준이다. 그의 개혁정책은 연호를 따 메이지 유신이라 부르며 근대화를 확립하고 부국강병을 달성했다. 물론 우리에게는 '적'이었지만 어떻게 일본을 그렇게 비상하게 만들 수 있었는지 연구대상이기는 하다. 같은 시기를 산 조선 고종(1852~1919)과 비교되는 인물이다.

교토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곳은 교토국립박물관 근처에 있는 귀무덤(耳塚)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 때 일본군들이 전리품으로 가져갔던 10만여 조선인의 귀와 코가 묻혀 있는 곳이다. 우리로서는 치욕인 것이 도쿄시내 중심가에 떡하니 서 있어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리다. 역사를 잊는 자에게는 반드시 역사가 복수한다는 격언이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교토시내 한복판에는 도지샤(同志社)대학이 있다. 시인 윤동주가 1년 동안 수학했다가 1943년 7월 사상범으로 체포됐고 이후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사망할 때까지 수학한 곳이다. 앞서 1923년에는 시인 정지용이 6년 동안 이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교정에는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있어 한국 방문객들을 조용히 맞는다.

/최수문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