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조선시대 범어(산스크리트어)에서 창안됐지만 범어보다 더 과학적이고 독창적입니다."
소설가 정찬주(61·사진) 작가는 신작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작가정신 펴냄)'에서 조선시대 범어 전문가였던 신미(信眉)대사가 한글 창제의 숨은 주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조선이 한결같이 숭유억불 정책을 취했지만 세종대왕이 신미대사의 도움을 받아 한글을 만들어 불교의 자주사상과 평등사상을 실현하고자 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천강에 비친 달'은 사실(역사기록)과 허구가 어우러진 '팩션 소설'이다. 불교 소설과 산문을 주로 써온 작가는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 속에서 신미대사의 흔적을 추적했다.
정 작가는 "세종부터 문종·세조·성종에 이르기까지 실록에 신미대사의 이름이 수십 번이나 나온다"면서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를 도왔다는 증거로 실록 등 문헌기록을 제시했다.
그는 "신미대사가 언급된 실록 기록을 뽑아보니 20~30쪽이 됐다"면서 "관심을 안 가져서 그 존재를 몰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세종대왕이 신미대사에게 궁궐까지 역마를 타고 다니게 했고 아들 문종에게는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존호를 신미대사에게 내리도록 유언하는 등 왕사(王師)에 준하는 대우를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국왕을 도와서 세상을 이롭게 했다는 '우국이세'라는 존호는 아무에게나 내릴 수 없다"면서 "태조 이성계의 곁에 무학대사가 있었다면 세종의 곁에는 신미대사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범어의 음운체계는 한글과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똑같다"면서 "범어는 50자모, 한글은 28자모인데 한글이 범어보다 더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라고 덧붙였다.
또 "실록은 유생들의 기록이어서 고승의 이야기는 폄하되거나 축소·왜곡됐는데 실록을 보니 모래밭에 바늘 줍듯이 그런 편린이 언뜻언뜻 보였다"면서 "그런 것을 모아 모자이크하듯 쓴 것이 이번 소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