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회계사, 공익 위해 목소리 내야


최근 회계업계에서는 (회계법인) 지정제를 지금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정제는 과거 회계와 관련해 문제가 있거나, 부채비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상장을 앞둔 기업에 한해 금융당국이 특정 회계법인을 지정해주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있는 독특한 제도다. 일반적으로 지정제에 해당하는 기업은 자율적으로 감사 계약을 맺을 때보다 많은 감사 보수를 지불한다. 회계법인도 돈을 많이 받는 만큼 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 회계감사를 철저하게 한다. 업계에서 지정제 확대가 회계 투명성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지정제가 확대되고 감사 보수가 올라간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회계 감사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순진하다. 회계 품질은 단순히 감사 보수로만 결정되지도 않을뿐더러 회계법인이 감사 품질 저하의 이유 중 하나로 대는 감사인과 피감법인 간의 갑을관계 해소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지정제에 해당하지 않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갑을관계 해결은 힘들 것이다. 회계법인은 기업과 단순히 감사 계약뿐만 아니라 컨설팅·세무 등의 다양한 업무로 엮여 있으며 이로 인해 감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일부 규모가 작은 기업의 감사를 맡는 회계법인은 지정제를 무기로 기업에 횡포를 부릴 가능성도 있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외이사 제도와 감사위원회 등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지난달 말 2주 동안 미국·영국·독일 등 자본시장이 발달한 국가들을 취재하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외이사 제도와 감사위원회의 역할, 즉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회계 투명성이 자랄 수 있는 근본적인 토양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회계업계에서는 지정제 확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회계업계가 진정으로 회계 투명성 개선을 위한다면 지정제와 감사 보수만이 아닌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단체는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공감과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