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옷 산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 너무 우울하다”
틈만 나면 시장으로 백화점으로 쇼핑다니기를 좋아하던 친구가 푸념을 늘어놓는다.
“요즘엔 친구 만나서 밥 먹을 때도 서로 부담스러우니까 괜찮은 레스토랑 가자는 말을 못하겠더라”
청담동, 압구정동으로 맛집 찾아 다니기를 좋아하던 친구도 지갑 문을 닫았다. 한 끼에 몇만 원대 식사도 아까워하지 않던 친구가 요즘에는 몇천 원짜리 대중식당을 애용한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월급이 깎인 것은 아니다. 들어오는 수입은 예전이나 똑같은데도 지출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이유는 한 가지, `불안하다`는 것이다. 경기가 안 좋아질 것이라는 불안, 직장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 여기에 `남들도 안 쓰는데 혼자 쓰기 불안하다`는 생각. 뚜렷한 근거가 없는 소비자의 심리적 불안에 잘 나가던 상권의 점포는 잇달아 문을 닫고, 소비자들은 더욱 위축된다.
3월부터 계속되는 금융시장의 동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카드사가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면서도 지금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먼저 나서서 카드채를 사들이지는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최근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가진 한 카드사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만에 하나 연체금을 100% 떼여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자기자본이 있는데도, 심리적인 불안 때문에 투자가들이 꿈쩍도 안하다는 얘기다.
카드사별 경영 사정을 반영하는 민감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데다 금감원에서 연일 새어나오는 업계의 합병ㆍ인수설이 업계의 불투명성과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킨다는 것. 카드사들은 정부가 시장 불안을 잠재우려 하지는 않고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카드사의 한 직원은 “정부의 한 마디면 카드채 시장에 숨통이 트일텐데, 정부가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한다. 글쎄다.
그러자 이어지는 말. “시장의 원리에 따라 카드업계 구조조정을 한다면 좋다. 그런데 정작 합병이니 시장 퇴출이니 하는 말이 정부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뭐냐.” 글쎄다.
<신경립기자(생활산업부) kls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