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사상 첫 인사청문회가 열린 19일 여의도 국회본청 430호. 회의장에 들어선 이주열 총재 후보자는 청와대 지명을 받았던 2주 전보다 마르고 머리카락은 검게 염색한 모습이었다. 지명일에 빨간 넥타이를 맸던 그는 이날은 파란 넥타이로 나타났다. 한은 총재 후보가 된 소감을 묻는 말에는 "책임감이 기쁨을 압도한다"고 짧게 답했다.
이 후보자의 긴장감과 달리 막상 뚜껑을 열어본 인사청문회는 시종일관 무난한 '정책 청문회'로 진행됐다. 일반적으로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를 뜨겁게 달구는 부동산 투기, 병역, 위장전입, 자녀국적 등 이른바 신상검증 '4종 세트'에 해당사항이 없는 상태에서 의원들은 이 후보자의 과거 정책 결정을 검증하고 향후 계획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김중수 총재와 질의응답에서 민감하게 각을 세웠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 후보자가 35년간 한은에서 잔뼈가 굵은 '한은맨' 인 만큼 통화정책에 있어서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의원들은 여야 막론하고 질의 전에 '축하한다'는 인사말부터 건넸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제가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는 법을 발의해서 총재가 되는 데 기여했다"며 "아니면 아마 청와대 실세가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도덕성 지적을 안 받고 정책 지적을 받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도 했다.
소모적 논쟁이 빠진 인사청문회 진행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지만 '칼날이 무딘' 정책검증은 국회 인사청문회의 근본적 한계라는 말도 나온다. 시장 전문가가 아닌 정치인 입장에서 중앙은행에 대한 다각적인 검증작업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 한계 극복을 위해 후보자를 단수로 확정하기 전에 미국처럼 총재 후보군에 대한 시장검증을 미리 거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채권시장 역시 별 반응이 없었다. 매파 성향인 이주열 한은 총재의 인사청문회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소폭 강세를 보였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10%포인트 내린 2.830%에 마감했으며 5년물은 0.018%포인트 하락한 3.131%에 거래를 마쳤다. 오전에 약세를 보였던 10년물 이상 장기물의 금리도 오후 들어 강세로 돌아서며 하락 마감했다. 이정준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청문회에서 이 총재가 금리인상과 관련해 기존에 나타냈던 원론적인 입장만 보였던데다 이미 이 총재의 매파 스탠스가 선반영됐기 때문에 오히려 일부 기관을 중심으로 저가 매수세가 유입돼 채권 시장이 강세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