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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는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국면에 빠질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은 고령화, 생산성 하락, 노동참가율 저조 등의 여파로 선진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갈 위기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는 로봇·게놈 등 혁신의 물결이 눈앞에 있다며 조만간 생산성 향상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장기침체는 1930년대 대공황기의 경제학자 알빈 한센이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장기간 성장이 멈추거나 아주 미약한 상태를 말한다.
3일(현지시간) 보스턴 셰러턴호텔에서 열린 '장기침체의 경제학' 패널 토론에서 로버트 홀 스탠퍼드대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성장은 실망스럽고 유럽·일본은 장기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실질소득 정체, 실업률 상승 등 경제생산이 이전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주기적으로 나타나며 세계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전기·내연기관·전화·무선기술 등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기술혁신 역시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컴퓨터, 이커머스 등 디지털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의 효과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며 "생산성 증가 둔화, 경제활동참가율 저조, 인구 감소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유럽 등에서 일본식 장기불황 리스크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머스 전 장관은 "금융위기 이전의 경기팽창은 중앙은행의 돈 풀기에 따른 대출과 자산 가격 상승 때문"이라며 "장기침체는 선진국에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고 미 경제의 성장세도 지속될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장기간의 초저금리 지속으로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여력도 바닥 났다는 게 이들 비관론자의 주장이다.
반면 아이켄그린 교수는 미국이 앞으로 장기침체를 겪는다면 "다른 이유는 없고 단지 비관론에 감염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로봇·게놈 등 새로운 영역에서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며 "최근 생산성 둔화는 헬스케어·교육·금융 등 기존 영역이 새로운 기술에 도전을 받고 있는 반면 새 기술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적응기간이 끝나면 생산성 향상이 가속화할 것"이라며 "최근 생산성 향상 둔화는 눈앞에 혁신의 물결이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