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을 재배하는 A씨는 지난해 겨울 폭락하는 마늘 값 탓에 발을 굴렀다. 좋은 기상여건 탓에 시장에서 8만6,000톤가량의 마늘 공급과잉이 발생해서다. 정부가 5만여톤의 마늘에 대해 긴급 시장 격리 조치를 취해 가격안정에 나섰지만 손실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올해 초에는 월동무와 양배추 농가가 피해를 입었다. 김장철이 지난 탓에 수요는 줄어든 반면 공급은 늘었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 농작물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농가가 처한 위험은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뿐만이 아니다. 반대로 기상여건이 너무 좋아도 위험에 노출된다. 이른바 '풍년' 리스크다. 생산량 증가로 과잉공급이 이뤄지면 가격이 급락해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게 비일비재하다. 쏠림 현상도 문제다. 지난해 배추 생산량 감소로 가격이 상승하면 올해는 너도나도 배추 재배에 나서면서 가격이 폭락해 손해를 보는 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앞으로 자연재해뿐 아니라 농작물의 가격변동이나 수확량 변동에 대비하는 '농업수입보장보험'을 도입할 방침이다. 농업수입보장보험은 농가의 품목별로 실제 수입이 기준 수입 이하로 하락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상품이다. 기준 수입은 최근 5년간의 평년 수확량과 같은 기간 월평균 도매가격을 곱한 값으로 산출하며 실제 수입은 실제 수확량과 실제 시장가격을 곱한 값이다. 최근 5년간 평균 수입이 1,000만원이던 시설오이 농가가 오이 값 폭락으로 600만원의 수입밖에 올리지 못하면 수입 감소분 400만원의 80%인 320만원을 보험금으로 받는 방식이다. 이 보험이 도입되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풍년이나 쏠림 현상에 따른 가격하락에 대비할 수 있게 된다.
도입 대상은 △생산액, 재배면적, 농가 수 비중이 높고 △가격ㆍ생산액 변동성이 크며 △재해보험 가입률이 높아 보험 선호도가 큰 품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품목의 특성상 수량이나 가격 측정이 어려워 보험설계가 불가능한 품목은 제외된다.
정부는 지난해 콩·양파·시설오이·포도·배추·한우 등 6개 품목에 대해 수입보험을 시범 운용했다. 그 결과 양파와 포도 농가의 수입액 변동폭이 20~30% 감소해 수입 안정성에 도움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앞으로 수입보험 대상 후보군은 지난해 시범운용한 6개 품목 외에 고구마, 벼, 쌀보리, 감귤, 떫은 감, 단감, 사과, 자두, 고추, 파, 양배추, 마늘, 수박, 딸기, 풋고추, 토마토, 참외 등으로 확대한다. 수입보장보험이 도입되면 농가소득뿐 아니라 농산물의 수급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농가 수입 감소 위험성이 줄어들면 가격에 따라 특정 품목으로 재배가 쏠리는 현상도 누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농가와 정부가 보험료를 분담하면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제한 규정도 피해갈 수 있다. 80년의 농작물재해보험 역사를 지닌 미국의 경우 수입보장 방식의 보험이 80%를 차지할 정도로 수입보장보험이 활성화돼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작물 재해보험에 이어 농업수입보장보험이 도입되면 농가가 처하는 거의 모든 위험이 보험 대상에 포함된다"며 "수입보장보험의 정부 지원 규모는 농가의 보험료 부담, 재정여건 등을 감안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