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깊어지는 각국 중앙은행

인플레 대책 너무 빨라도, 늦어도 문제

각국 중앙은행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각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글로벌 초과 유동성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인플레 대책을 활용할 적절할 시기를 잡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자칫 긴축정책의 타이밍이 빠르면 회복조짐의 경기가 다시 고꾸라질 수 있고 반면 타이밍이 늦으면 걷잡을 수 없이 인플레가 확산될 수 있다. 금융위기와 인플레 사이에 끼인 글로벌 경제의 향배가 중앙은행의 판단에 달린 셈이다.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한국은행에 이례적으로 통화 흡수수단인 통화안정증권 제도를 문의할 만큼 중앙은행들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 대책이 핵심 과제다. 물론 지금은 경기회복이 당면과제여서 촌각을 다툴 정도는 아니지만 향후 경제안정을 위해서는 시중에 풀린 막대한 돈을 어떤 식으로든지 흡수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관건은 타이밍이다. 만약 중앙은행이 경기가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은 시점에서 금리인상 등 긴축정책의 칼날을 들이댈 경우 경기는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회복불능 상태로 추락할 수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은 지난 1980년대 중반 저금리로 자산가격이 급등하자 1989년부터 긴축정책으로 선회한 뒤 부동산ㆍ주가가 급락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긴 암흑기를 겪었다. 반면 유동성 흡수 타이밍이 늦는다면 인플레는 불 보듯 뻔하다. 전세계에 풀린 엄청난 돈은 부동산ㆍ원유ㆍ금ㆍ곡물 등의 자산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능가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결국 중앙은행들이 통화량을 죄기 위해 뒤늦게 금리를 급격하게 끌어올리고 이는 또다시 금융조달 여건을 악화시켜 전세계 경제전반에 더 큰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은은 최근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경기회복 및 금융시장 상황 개선에 주안점을 두겠다”면서도 “금융불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각종 정책수단을 금융시장 상황이 호전될 때 시장친화적으로 정리하는 방안을 미리 마련해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은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앞으로 경제가 회복된다면 중앙은행으로서는 물가 안정을 위해 통화량 흡수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그 방안들을 지금부터라도 검토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한은이 시중에 유동성을 지원한 금액은 외화 부문 57조8,000억원, 원화 부문 24조6,000억원 등 총 82조4,000억원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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