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출구(Exit)'쪽을 바라 보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가 회복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 쏟아 부었던 과잉유동성을 흡수, 미래에 닥쳐올 인플레이션을 대비하려는 출구전략 논의가 분분하다. 그러나 출구를 바라보는 각국 중앙 은행들의 속내는 엇갈리고 있다. 몇몇 중앙은행은 곧 금리인상 기조에 돌입하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반면 특정 국가의 금리인상은 출구전략 도미노 효과를 낳아 1930년대 대공황 전철을 밟을 것이라며 시기 상조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출구 전략의 각개 약진은 글로벌 경제가 지역별로 불균형 성장을 보이는데다 인플레이션 리스크도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출구전략의 국가간 시차는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 다양한 파급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리비에 블랭샤드 수석이코노니스트 역시 "중앙은행 간의 출구전략에 조율 없다면 글로벌 금융시장을 위태롭게 하고 세계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각국의 금리 격차에 따른 캐리 트레이드의 기승, 달러의 가치의 급락 등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높아질 것이라는 점. 짐 오닐 골드만삭스 리서치 헤드는 "중앙은행이 출구를 향해 각개 약진함으로써 초래될 최대 위험성은 통화의 오버슈팅(급등락)"이라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미국과 유럽과의 출구전략 시차로 내년 말까지 달러가치가 유로당 1.6달러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모하메드 엘 에리안 핌코 최고경영자는 이와 관련, "달러 약세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달러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냐가 더 큰 문제"라며 "조율 없는 출구전략은 달러가치를 무질서하게 붕괴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이 원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조율 된 통화정책"이라며 "그러나 자국 이익이 우선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엇갈린 출구전략은 또 각국 공조체제를 일시에 무너뜨려 통화 전쟁으로 내몰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금리 인상으로 자국 통화 가치가 상승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이머징마켓은 환율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은 섣부른 출구전략에 경계하고 있다. 지난 23일 막을 내린 각국 중앙은행장의 연례 '잭슨홀 미팅'에서 벤 버냉키 FRB의장은 "지속 가능한 회복을 위해서는 이미 거둔 성과를 공고히 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정책공조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출구 전략의 시기와 방법 등을 둘러싼 중앙은행의 입장 차이에 우려하면서 입구전략 처럼 출구전략 역시 국제적 공조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하고 있다. 일단 특정 중앙 은행이 긴축으로 전환하면 경쟁국이 앞 다투어 출구전략에 시동을 걸고, 이것이 글로벌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출구전략 국제공조 지지자들은 유럽 가운데 가장 먼저 출구로 향할 것으로 예상되던 영국이 돌연 양적완화를 확대한 것이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고 지적한다. 영국중앙은행(BOE)는 지난 19일 전격적으로 500억 파운드(840억 달러)의 추가 국채 매입을 전격 선언했다. 8%에 육박하는 실업률에다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대두되자 통화팽창 정책을 가속화한 것. 한편 현재까지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호주와 캐나다, 이스라엘, 노르웨이 등은 가장 먼저 출구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글랜 스티븐스 호주중앙은행(RBA) 총재는 지난 14일 반기 통화정책 보고서를 통해 "기존 통화 완화 정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올 것"이라며 "이때는 금리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리는 게 적절할 것"이라며 출구전략 임박을 선언했다. 호주는 올 가을 중 금리인상 모드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5일 국채 인수 프로그램을 종료한 이스라엘 역시 경제성장률이 올해 0.9%에 이어 내년에 2.9%에 이를 것으로 보여 곧 출구로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늦은 내년 하반기에나 출구전략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파적 시각이 강한 EU의 출구전략은 미국 보다 한 발 앞선 내년 상반기쯤. 그러나 미국은 일단 시동을 걸면 급격한 금리인상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더딜 것이라는 전망은 경기체감 지표인 실업률이 내년 상반기까지 좀 더 오르고 '더블딥(이중 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등 펀드멘털(기초체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분석에서 연유한다. 블룸버그통신은 더블딥 가능성이 20%에 이른다는 월가 전문가 설문조사를 내놓은 적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FRB는 실업률이 정점에 도달한 뒤 평균 14개월이 지나서야 긴축정책으로 전환했다. FRB의 내부는 비둘기파(경기부양론자)가 득세하고 있고, 벤 버냉키 의장은 대공황기 정책실패의 교훈을 잘 알고 있다. 내년에는 중간선거라는 정치적 변수도 있다. FRB 이사출신의 프레디릭 미쉬킨 컬럼비아대 교수는 "위기에 빠졌을 때 점진적 수단이 좋은 정책이 아니었듯 상황이 바뀌면 통화정책도 반대 방향으로 급격히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