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났지만 이라크는 아직 전쟁중이다. 예정된 일정처럼 미국의 승리로 침략전쟁은 끝이 났지만 전쟁의 상처는 깊어가고 있다.
잿빛 죽음의 도시 바그다드엔 지금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따로 없는 듯하다.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의 분노인가. 죽음을 눈앞에 둔 어린 영혼들의 애처로운 울부짖음마저 예삿일이 돼버린 메소포타미아, 그 곳에서는 아직 역겨운 죽음의 냄새가 목구멍까지 파고든다.
죽은 자들의 잃어버린 손과 발, 총탄에 깨어져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창백한 몸부림이 뒤엉키고 있다. 시커먼 그을음으로 얼룩진 탱크 잔해와 찌그러진 군용트럭들 그리고 모래 벌판에 울려 퍼지는 점령군의 총성과 불발탄을 갖고 노는 아이들의 위태로움이 사막을 달구고 있다.
이라크는 지금 바람 속의 촛불처럼 흐느끼고 있다. 병원과 진료소는 약품을 구하려는 자들로 아우성이다. 전기가 끊긴 지 오래건만 해방군 미국이 판치는 세상은 여전히 암흑 천지다. 교통도, 통신도 별 다른 복구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굶주린 약탈자는 거리의 피를 더하고 있다. 전쟁이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도 파괴한다”고 했던가. 사라진 수 천년 인류의 유산이 파리의 암시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점령군의 벌거벗은 폭력에 저항한 이라크인의 주검은 살아 남은 자의 젖은 눈을 공포와 전율로 메마르게 했다. 흩어진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할 겨를도,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후세인`도, `검은 황금`이라는 석유도 더 이상 그들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오직 하루 하루를 생존하는 것만이 그들의 절박한 목적이다.
세계는 티그리스강을 적신 이라크의 눈물을 저버렸다. 이라크에서 인류는 근대가 이룩해 온 정의, 평등, 평화, 공존 등의 근본적인 가치를 부정했다. 약육강식의 동물적 세계질서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버린 것이다.
세계의 양심을 단지 `비겁하다`거나 `부끄럽다`고만 말하는 것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수식어일 뿐이다. 하이에나처럼 이라크 재건의 이권에 군침을 질질 흘리는 열강의 모습에 가책을 느끼는 건 어쩌면 남아 있는 인류 양심의 호소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삶의 희망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누군가의 승리로 혹은 패배로 이라크전이 끝났다`고 말하지 말라. 이라크는 아직 전쟁중이다.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 정체 모를 극도의 긴장감이 온몸을 엄습해 온다.
<전갑길(국회의원ㆍ민주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