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종금 등 파탄직전/경제부처·정치권선 “나몰라라” 뒷짐만/재계관계자 “특단조치 시급”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금융대란이 마침내 눈앞의 현실로 닥치고 있다.
23일 금융계와 업계에 따르면 연초 한보철강으로 재벌그룹의 부도사태가 촉발된 이후 불과 4개월반만에 삼미·삼립식품·한신공영·진로·대농·기아 등 6개 그룹이 도산하거나 부도유예됐고 최근 금융시장에선 T, D, S, H, 또다른 S 등 10여개 재벌그룹의 부도처리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다.
이같은 부도공포의 여파로 주가가 급등락하고 금리·환율이 급등하는 등 신용공황 직전의 위기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대해 강경식 경제팀은 『금융질서의 붕괴 상황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면서도 여태껏 『개별기업에 대한 직접 개입은 세계무역기구(WTO)등 국제 질서상 불가능하다』고 얼버무리며 구체적인 정책대응에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집권욕에만 눈이 어두워 정부의 이같은 무소신과 대책실종을 남의 일인 듯 수수방관하고 있다.
재계관계자들은 최근 우리 경제가 그야말로 금융대란과 이에따른 경제파탄의 위기상황에 놓였다며 정부가 한시바삐 특단의 조치를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들어 국내 6대 시중은행은 벌써 1조원 안팎씩 부실채권을 떠안아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는 은행권 전체가 헤어날 수 없는 경영위기에 봉착해 있다.
종금 등 제2금융권은 거의 영업이 마비된 상태다. 금융계관계자들은 최근 제2금융권의 경영사정과 관련, 『부도유예라는 응급조치가 없었다면 종금사를 포함한 제2금융권 전체가 연쇄도산하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는 각종 지표상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소지를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1천3백억달러를 웃도는 총외채, 연간 2백억달러 이상인 경상수지 적자, 언제라도 핫머니로 돌변할 수 있는 13조원(1백60억달러) 이상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등 위태로운 금융 지표들이 불길속의 「다이너마이트」처럼 도사리고 있는 양상이다.
여기에 체제붕괴 위기에 직면한 북한의 안보 위협이 상존해 있고 최근 태국·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주변국가들이 극심한 외환위기에 시달리고 있어 그 불똥이 언제 우리나라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금융관계자들은 최근의 금융교란 상황에 겹쳐 상위재벌 1, 2개가 다시 부도처리되거나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이 시작될 경우 우리 경제는 총체적인 신용공황이 발발, 경제파탄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경고하고 있다.<유석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