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한 나라를 바라보는 제3자의 시각이 더욱 정확하고 객관적일 때가 있다.
일본을 예로 들면 '국화와 칼'을 쓴 루스 베네딕트가 그랬고, '축소지향의 일본인'을쓴 이어령이 그랬다.
그런데 이번엔 한 영국인이 그런 방식으로 한국을 통찰한 책이 나왔다. 책을 쓴 이는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비판으로 유명한 이코노미스트지의 특파원 다니엘 튜더다.
그래서 더욱 눈 여겨 보게 되는 이 책은 정신 없이 걷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우리 발자국의 궤적을 정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2002년 서울이 월드컵 열기로 들끓던 그 순간, 한국을 방문한 운 좋은 열아홉 살 영국 청년 다니엘 튜더는 신기한 광경을 목도한다. 한국의 8강 진출, 4강 진출도 기적이었지만, 숨죽여 함께 경기를 지켜보다 마침내 골을 넣을 때마다 서로 얼싸안고 기뻐 날뛰던 한국의 열기가 그에겐 더 놀라웠다. 그 순간, 그는 한국에 반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호시탐탐 한국을 다시 찾을 기회만 노리던 그는 졸업 후인 2004년 한국에 돌아와 증권회사에서 일했고, 2010년부터는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다. 한국에 머물며 일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그는 한국의 맨 얼굴을 보게 됐다.
이 같은 탄생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도드라질 수 밖에 없다. 영국식 합리주의라는 펜으로 책을 집필한 저자는 한국이 이룬 놀라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정착에 찬사를 보낸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기적을 이루느라 한국이 희생해야만 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그 이유는 행복을 되찾아오기 위해서"라며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시대의 유물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날카로운 관찰자는 우선 한국의 개발시대에 주목한다.
그는"박정희는 경제개발을 지휘했고, 기업은 이에 충성으로, 국민들은 산업역군으로 거듭남으로써 화답했다"며"1897년 한국을 방문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만 해도 한국인에 대해 '사람들은 게으르고 나태하다'는 기록을 남겼지만 산업화 이후, '빨리빨리'와 근면 성실의 덕목은 한국인에 제2의 천성이 됐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그는 그에 따른 그늘도 간과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경제 대국을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은 모든 것을 여기에 집중했는데, 그에 따른 대가 또한 당연히 지불해야 했다. 그 대가는 무한 경쟁이라는 강박이었다. 경쟁은 먹고 살 만해져도 계속됐다."고 그는 기술한다.
그는 "한강의 기적은 부패의 만연이라는 뜻밖의 부작용을 낳았다"며 "떨쳐내지 못한 부패의 유혹에 아직도 수많은 정치인이 걸려든다"고 꼬집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재벌 시스템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 누구도 삼성전자가 주저앉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기업 지분의 일부만을 차지한 재벌 총수가 마치 한국 경제의 모든 것인 양 신성시되는 풍토가 계속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비리를 저지른 재벌 회장이 대통령 특별 사면을 받았던 사례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한국 경제에는 이 경영자들이 필요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의 경영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 한국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것이 이러한 사면 복권의 이유로 흔히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러한 범죄인들이 선고된 형을 모두 살게 해 더이상 유사한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