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10월 8일] 구로공단이 사는 길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에서 정보통신(IT)회사를 운영 중인 박모 사장은 요즘 회사를 다른 곳으로 옮길 지 여부를 놓고 심각히 고민 중이다. 직원을 새로 뽑으려고 해도 출퇴근이 힘들다는 이유로 우수 인재들이 오기를 꺼려하는 데다 인프라가 부족해 외국인 바이어를 맞는 것도 불편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로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꾼 지 10년 만에 입주기업 1만개, 고용인원 13만명이라는 놀라운 변신에 성공했다. 단지 곳곳에는 수많은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화려한 외형에 비해 교통이나 교육시설 등 관련 인프라는 과거 구로공단 시절에 비해 별로 달라지지 않다보니 갈수록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는 불만이 입주업체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단지 입주사들은 매일 아침 출근시간이면 심각한 교통체증 탓에 한바탕 전쟁을 치르곤 한다. 접근성이야말로 기업 환경에서 최우선 과제로 꼽히지만 시흥대로에서 좌회전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툭하면 도로가 마비된다. '수출의 다리'로 인한 교통체증은 줄곧 제기된 문제지만 관할구청에서는 몇 년째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요 입주업체가 제조업에서 IT기업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낡은 규제에 매달리다 보니 생산시설에 제대로 된 교육시설 하나 마음대로 지을 수 없는 게 단지의 현주소다. 구로디지털단지는 지난 10년간 생산이 멈춰버린 공간에서 한국 IT산업의 요람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 등과 달리 워낙 짧은 기간에 만들어지다보니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오는 29일 디지털단지에서는 '입주기업 1만개 돌파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입주기업에 불편만 안겨주고 수많은 규제 전봇대가 버티고 있는 한 디지털단지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디지털단지가 양적 팽창에 취해있기 보다는 입주기업들과 함께 커나가는 내실을 갖춘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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