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들은 권력을 ‘힘에 의한 가치 배분’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 또는 권위, 물리적인 자원 동원력 등을 바탕으로 마땅히 누군가에게 줘야 할 것들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직장에서 제일 중요한 권력 기제는 평가입니다. 조직 구성원들의 잘 한 일, 못한 일을 가리고 정확한 보상을 하는 과정이야말로 힘이 없이는 불가능한 절차입니다. 혁신도 결국은 성과평가에서 비롯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 국내 대기업은 계열사의 재무성과뿐만 아니라 기존 성과 대비 상승률, 동종업계 및 비즈니스 그룹사 대비 실적률 등을 포괄적으로 반영해 사장의 연봉에 연동시켰습니다. 그 기준에 따라 사장들은 연봉과 함께 자신이 임명할 수 있는 임원의 수까지 지정받았습니다. ‘보상’과 ‘권한’을 실적과 연계함으로써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장 없이는 살아남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런 혜안은 오너가 잘하고 못하고를 가리는 신상필벌의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지 않으면 발휘하기 힘든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꼭 한 가지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단일체’가 아니라는 경영학자들의 말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경영 사상가 제임스 마치(James March)는 기업이 ‘지배적 연합체’(Dominant coalition)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상이한 여러 집단 또는 의사결정자들이 모인 부족 연맹체와 같은 곳이라는 말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제왕적 경영주가 사람들의 성과평가를 무기로 강한 리더십을 가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랫사람들을 분석하고 보상하는 일은 그의 동료들이나 부서장에게 맡깁니다. 이른바 다면 평가제도입니다. 한때는 민주적인 방식의 직원 평가제도로 인적자원관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정평이 높았던 체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료나 부서장에 의한 평가를 몇 년 간 실시해보니 기대한 것만큼 효과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또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일하는 조직의 경우에는 ‘글로벌 인재’들을 인사고과로 배려한다는 씁쓸한 비화도 듣게 됩니다. 왜냐고요? 그들의 이직 의도를 낮추기 위해 정해진 시간 동안 정확하게 일하면 보상하는 문화를 느끼게 해 주려는 것입니다. 정작 한국인 직원들은 11시, 12시를 넘겨 퇴근할 경우가 많은데 말입니다. 게다가 ‘몰아주기’ 관행은 열심히 하는 사람의 동기를 저하시킵니다. 특히 부장이나 과장 수준에서 막내를 불러서 지침 아닌 지침을 내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X 대리가 승진해야 하니까, 한번만 희생하자. 다음에는 너도 챙겨 줄게.’ 이유없이 선배를 위해 희생하는 게 미풍양속이라고 여기는 문화, 조직 차원에서 형평성을 위해 도입된 절차를 또 다른 관행으로 오염시켜버리는 행동은 대체 어떻게 해야 ‘정상화’가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경영자의 인사 원칙이 분명해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암행어사식 평가’, ‘저승사자식 평가’도 불사해야 합니다. 훌륭한 기업은 인사팀이 십분 역량을 발휘합니다. 부서별로 직원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네트워크와 능력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관찰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절대로 공식 문건이나 부서장의 의견으로는 알 수 없는 내재된 맥락을 분석하는 인류학적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업이 모든 것을 자율과 민주적 체제에 맡겼다는 ‘자기만족’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보완해야 할 점은 없는지, 평가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관찰은 계속돼야 합니다,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길 원하고 바란다면 말이죠. /iluvny2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