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심사·약점부터 파고들어야" 공세 예상되는 농업등 협상쟁점 충분히 파악하고 국내 이익단체 목소리도 미기화 협상력 높여야 기업등과 함께 美업계 미리 만나 설득 주력도
입력 2006.02.17 17:56:35수정
2006.02.17 17:56:35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겪은 변화보다 더 큰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무후무한 개방의 파고를 이겨내고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미국의 관심사와 약점을 꿰뚫고 우리의 실정을 냉정히 파악”하는 협상의 기본인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충족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제언이다. 이와 함께 정부뿐 아니라 총체적 국가역량을 동원해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FTA를 통해 내부적인 경제개혁을 달성할 수 있다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경제부처가 개방과 연계해 국내 산업을 발전시킬 분명한 플랜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또 “협상 쟁점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미국의 사정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업ㆍ서비스 분야 격돌 불가피=최대 쟁점이자 한미 FTA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것은 다름아닌 농산물이다. 미국은 한국의 쌀시장 개방을 이슈화할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쌀 개방을 관철시키거나 이를 지렛대로 삼으면 다른 농산물 개방 등에서 최대한 이득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곡류, 과실류, 쇠고기 등 축산물의 고관세를 대폭 축소하고 양허 이행기간을 단축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농산물 검역제도 완화와 수입통관절차 개선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예측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농산물 협상의 어려움을 감안, “협상조건에 따라서는 결렬될 수도 있으며 양보하지 못하는 절대조건이 있을 수 있다”고 16일 강조한 바 있다. 이명수 농림부 차관도 17일 FTA의 예외품목에 쌀을 포함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농업 분야에서 격돌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서비스 부분 중 금융에서는 동등한 경쟁기회 보장 및 규제개혁을 강하게 요구할 계획이다. 우체국ㆍ농협ㆍ수협 등 준정부기관의 혜택 폐지와 보험ㆍ자산운용 등 다양한 금융상품의 개발 허용이 주요 이슈다. 미국 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국내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것과 방송ㆍ통신 시장의 외국인 지분규제를 철폐하는 것도 미국의 협상목록에 담길 것이 확실시된다.
◇우리 요구 사항 당당히 내세워야=개방 수준이 낮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수세적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지만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섬유 및 자동차 등 제조업의 전면 개방. 자격증 상호인증과 경제인 이동 자유화 등의 이슈에서 공세를 취할 수 있다. 또 국내 이익단체들의 목소리를 무기 삼아 협상력을 높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국내 이해단체의 저항 때문에 못 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이익단체의 정당한 저항은 협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을 간과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16일(현지시간) 세계 통상 관련 온라인 매체인 ‘월드 트레이드 온라인’에 따르면 상원 자동차 모임의 공동회장인 조지 보이노비치, 칼 레빈 의원은 한미 FTA 협상 출범 발표일에 미국 정부에 공한을 보내 “모든 현존하는 관세ㆍ비관세 자동차 장벽을 철폐할 것은 물론 미래에도 한국 자동차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비관세 장벽을 (한국이) 만들지 않는다는 보장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한국의 모든 자동차 무역 장벽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FTA는 중대한 결함이 있는 협정이 될 것”이라고 말해 자신들의 뜻을 반영하지 않을 경우 비준 반대 운동을 벌일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처럼 미국 내 이익단체들의 움직임은 벌써부터 활발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준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장은 “사전에 미국 측 이해관계자를 얼마나 설득하느냐가 공식 협상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며 “이 같은 일은 기업이나 이익단체가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FTA를 맺은 싱가포르ㆍ호주 등의 주요 기업 및 이익단체는 협상기간 중 아예 워싱턴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미 정부 및 현지 이익단체 관계자들의 공격을 저지하는 방패의 역할과 자국 협상단의 공세에 합류하는 창의 역할을 적절하게 소화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