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右派 양산한 참여정부

[데스크 칼럼] 右派 양산한 참여정부 이용웅 yyong@sed.co.kr “이번에 처음으로 한나라당을 찍었어. 선거 때마다 신민당으로 시작하는 정통 야당(현 집권 세력)을 습관적으로 지지해왔는데 군사정권의 후계자를 찍었더니 기분이 묘하더구만.” 얼마 전 지방선거를 마친 뒤 술자리에서 절친한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평생 진보를 자처했던 사람이 우파 지지로 돌아섰다는 얘기이다. ‘신조’(?)을 뒤집었다는 말이니 우리끼리는 그야말로 뉴스 거리였다. 정체성 모호한 좌·우 논쟁 이처럼 세상 분위기가 참 많이 바뀐 것 같지만 아직 딱 부러지게 우리 사회가 어느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이른 것 같다. 한나라당에서는 여당 때문에 우리나라가 ‘좌파 세상’이 됐다고 선전하지만 선거 결과는 완전히 우파의 ‘판쓸이’였으니 대한민국이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참으로 헷갈리는 판국이다. 미국의 데일리뉴스는 최근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 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작 로스앤젤레스의 한인들은 월드컵에 빠져 김정일보다 스위스의 공격수 프라이를 더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사회가 국가 안보를 등한시하는 집단 최면에 빠졌다는 비아냥이다. 도대체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쯤에 서 있을까. 여기에서 한 가지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과거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5공화국이 극렬 좌파 10만을 양성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율곡 이이 선생의 ‘10만 양병설’에 빗대어 하는 말이었다. 지난 79년 말에서 80년 초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으로 서울에 봄이 찾아온 바로 그때, 전두환 정권이 시민들의 피를 뒤집어쓴 채 대통령에 등극했다. 손 안에 들어 왔던 민주주의를 도둑맞은 선량한 시민들과 학생 사이에 좌익 이론이 말 그대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갔다. 좌절과 공포가 온 사회를 옥죄자 운동권에 헌신하는 양심 세력이 폭증하면서 우리 사회에 좌파 이데올로기의 홍수가 밀어닥친 것이다. 멀쩡한 사람들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좌파 이데올로기에 휩쓸려갔다. 덕택에 386은 물론이고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사람들은 자신들도 한때 ‘좌파 운동권’이었다고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는 판국이다. 말이 10만이지 좌파 이념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젊어 한때 배운 이념은 뒤늦게 고치기가 어렵다. 자신의 이념을 수정하더라도 최소 ‘사회민주주의’ 이상으로 나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 참여정부 들어 우파가 급증했다는 말이 그래서 떠돌고 있다. 이제는 거리낌없이 자신을 ‘수구 꼴통’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그리 어렵지가 않다. ‘개혁피로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고 ‘분배’니 ‘평등’이니 아름다운 말을 듣고도 오히려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반미’와 ‘혁명적 변화’를 외치는 사람들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소망(?)대로 우리 사회는 ‘좌파적 신자유주의’라는 짜깁기 이데올로기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사회문제 이념적 접근 말아야 오랜 투쟁으로 단련된 좌파는 물론 참여정부 들어 막강하게 파워를 키워낸 ‘자생적 신우파’의 등장으로 이념 논쟁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남덕우 전 부총리는 최근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선진화포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참여정부는 분배 상태와 사회보장제도 개선을 위해 별로 한 일이 없으면서 과거 정권 탓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참여정부가 가난 구제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상식이 아닌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아 ‘공(空)회전’을 거듭하는 것을 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다. 모든 일이 꼭 이념 투쟁처럼 들리기에 하는 말이다. 사정이 이처럼 복잡하게 꼬이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는 의문은 참여정부에서 성장한 ‘자생적 우파’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또 어떤 부담으로 작용할지 바로 그 대목이다. 입력시간 : 2006/06/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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