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2,000억달러면 국가신인도 측면에서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사상 처음으로 2,000억달러를 돌파하면서 외환보유액 적정 규모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월24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답변에서 이같이 밝히며 “앞으로는 환율시장 안정을 위한 미세조정 외에는 의도적으로 늘릴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박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2001년 외환보유액이 1,000억달러를 넘어섰을 때만 해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줬다. 그때와 비교하면 한은이 외환보유액 추가 적립에 무리수는 두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이 1,500달러일 때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2,000억달러 정도면 최악의 경제상황을 맞더라도 모자라는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액 적정 수준에 대한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내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1,250억달러)을 초과해 하루 74억~236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통안채 이자와 외환시장안정용국고채(환시채)의 이자비용까지 감안할 경우 외환보유비용이 연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은과 달리 재정경제부는 현 외환보유액이 너무 많다는 입장이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을 1,500억달러로 언급한 바 있다. 늘어난 외환보유액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은측은 “향후 남북관계까지 고려한다면 현재의 외환보유액을 축소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남북관계의 화해무드가 조성돼 북한 개발수요가 일어날 경우 외화가 필요한데 민간의 조달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면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보유한 총외채 규모와 자본자유화 등을 감안할 경우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채권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재경위 제출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적정 외환보유액을 적게는 951억달러에서 많게는 1,417억달러로 추정했다. 금융연구원도 지난 15일 적정 규모를 1,500억달러로 진단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세계 4위에 도달한 것은 거꾸로 달러하락 등의 대외환경 변화로 입은 손실도 세계 4위라는 의미와 같다”며 외환보유액의 감축을 주장했다.
한은이 각종 리스크를 감안해 현재의 외환보유액을 쌓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견해가 더 많다. 당분간 외환보유액에 대한 한은의 딜레마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