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시장이 또 하나의 분식 회계 스캔들을 맞게 됐다.미국 제2위의 통신기업 월드컴이 지난 5ㆍ4분기 동안 38억달러의 이익을 부풀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계 주식시장은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동안 매출 부풀리기ㆍ이중 장부 등의 분식회계에 혼이 난 투자자들은 이제 기업 회계장부의 지출 항목까지 꼼꼼히 따져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반칙'의 수법은 새로울지 몰라도 결과는 같다. 투자자들의 신뢰 추락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지출항목 위조는 매출 부풀리기보다 더 오래된 수법. 특히 성장세에 있는 테크놀러지 기업들이나 에너지 기업들은 이 같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물론 회계사들에게는 낯익은 기법이다. 이 때문에 월드컴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앤더슨의 변명은 더욱 어처구니없게 들린다.
이 회사는 월드컴의 재무담당 최고경영자(CFO)가 지출항목 변경에 대해 지시하거나 언급한 사실이 없다며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처럼 어마어마한 돈이 엉뚱한 항목으로 옮겨졌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도대체 회계감사의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번에 조작된 38억달러의 돈은 지난해 월드컴이 거둔 14억달러의 이익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회계 감사팀의 누군가는 이사실을 발견했어야 하며 누군가는 회사의 자산 규모에 대해 꼼꼼히 점검했어야 한다.
이처럼 솔직하지 못한 앤더슨 측의 말에 속을 투자자는 없다. 엔론사태 이후 투자자들은 엔론이 채무를 줄이기 위해 동원했던 특수 목적법인을 가진 기업들의 주식을 무조건 팔아치웠다.
이번 역시 기관들은 앤더슨이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기업들의 주식을 서둘러 팔아치우고 있다.
앤더슨은 이미 분식회계로 문제가 일고 있는 엔론과 글로벌 크로싱의 회계감사를 담당한 전과가 있다.
가뜩이나 고객이 줄어들고 있는 앤더슨은 더욱더 심각한 고객 이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여겨졌던 EBITDA에 대한 신뢰도 급속히 추락할 전망이다.
EBITDA는 이자와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에 감가상각비와 무형자산 상각비를 합친 이익으로 기업의 현금흐름 창출 능력을 가늠하기 위한 지표로 써왔다.
월드컴은 일반지출을 자본지출로 둔갑시켜 EBITDA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애널리스트들을 속여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번 월드컴 사건이 발생하자 기업 회계방식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미 진행하고 있는 일이다.
문제는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회계관행이다. 그동안 미국은 유럽 등 세계 각국이 채택하고 있는 국제 회계관행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며 그들의 방식이 최고라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의 분식회계 스캔들이 늘어갈수록 미국의 이 같은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타임스 6월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