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을 위조 또는 변조해 다른 사람의 명의로 대출을 받는 대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분증을 위조 또는 변조하는 방식으로 대출을 받는 전문 사기 대출 사건은 지난 2000년에 1건(2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7건(108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 들어서는 지난 3월까지 3개월 만에 벌써 총 8건(55억원)을 넘어섰다.
외환은행 양재남지점의 전모 차장은 지난 15일 오후 한 달에 2~3번씩 외화를 송금하는 고객으로부터 대출 요청을 받았다. 이 고객은 전 차장에게 “조카가 생활비 송금을 위해 아버지 명의의 통장을 만들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해 은행에 직접 나올 수가 없으니 조카가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가져오면 통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조카라는 사람이 지점을 찾아와 아버지의 신분증과 도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 차장은 이 사람이 제시한 주민등록증의 글씨체가 좀 진하고 사진의 화상도가 낮은 것에 의심을 품었다. 전 차장은 은행 고객정보 자료에 있는 핸드폰 번호로 본인에게 전화로 확인한 결과 서류상의 본인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전 차장은 즉시 경찰에 신고한 뒤 상담을 진행하며 시간을 끌었고 두 사람은 곧 경찰서로 연행됐다. 경찰 수사결과 두 사람은 땅을 팔려고 내 놓은 사람의 신분증을 위조해 대출사기를 벌이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의 경우 한 은행원의 기지(奇智)로 사전에 적발되기는 했지만 올들어 이처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과 같은 실명확인 서류와 등기권리증 등을 위조 또는 변조해 대출을 받는 사기사건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에는 모 은행 직원이 감정평가회사와 공모해 시가 25억원의 부동산을 46억원으로 과대평가해 대출을 해 준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말에도 한 사기단이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모 은행으로부터 부동산 담보대출 12억원을 챙겨 잠적하기도 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대출상담을 할 때 돈을 빌리는 사람의 직업이나 재산규모, 용모나 언행 등이 부적절한지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지만 일부 은행의 경우 이 같은 심사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실적위주의 영업에서 탈피해 최초 대출상담 과정부터 신용조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범행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고 일부 직원들의 공모 가능성도 있어 사전에 예방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진우기자 ra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