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14부. 문화·레저 육성해 소득 4만달러 시대로 문화 양극화 해소해야 파이 커진다
섬마을도… 소외계층도… 공연 인프라 늘려 문화저변 확대를영화·미술관·공연장 등 절반이상 수도권 편중어디서든 문화향유 쉽게 정부 시설확충 지원하고 기업은 도네이션 늘려야
정민정기자jminj@sed.co.kr김민정기자jeong@sed.co.kr
문화 양극화 해소돼야 파이 커진다
지난 1월 중순 매서운 추위 속에 전남 신안군 작은 섬마을에 자리잡은 안좌초등학교에서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하모니가 울려퍼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재학 중인 젊은 음악가들과 안좌초교 학생들의 ‘사나래 윈드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천사 아트캠프’ 현장이었다. 아이들은 긴장한 탓인지 때로는 박자를 놓치기도 했지만 한예종 재학생의 금관5중주의 도움으로 멋진 앙상블을 선사했다. 이는 예술의 가치를 함께 나누자는 기치를 내건 한예종이 신안의 초·중학교 학생 160여명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섬&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박종원 전 한예종 총장은 “모든 국민이 예술의 감동을 누릴 수 있도록 문화의 가치와 영역을 넓혀가야 할 것”이라며 “문화격차를 해소하면 문화시장 규모도 커지고 문화융성을 통한 창조경제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도농ㆍ계층 간 문화격차=전북 장수군의 ‘한누리 시네마’는 국내 유일의 농촌 영화관이다. 인구 2만 3,000여명에 평균 연령이 57세인 장수군에 영화관이 들어선 것은 2010년 11월. 지금까지 7만여명이 영화관람을 했는데 한해에 주민 한명당 1.5회 영화를 관람한 셈이다. 하지만 장수군처럼 제대로 된 극장을 갖춘 곳은 지방에 많지 않다. 전국 230개 시군구 가운데 극장이 아예 없는 곳이 2012년 말 현재 109개에 이른다.
공연장도 수도권에만 몰려 있다. 지난해 실시한 ‘공연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연시설은 2007년 662개에서 2011년 1,093개로 2배가량 늘었지만 전체 공연시설의 52.6%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지방으로 갈수록 공연장 가동률은 더욱 열악하다. 서울은 72.6%인 데 반해 경상도는 42.3%, 전라도와 충청도 등 나머지 지역은 20∼30% 수준이다. 미술관 등 다른 문화시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도농 간 문화격차는 물론 계층 간 문화격차도 심각하다. 소득분배와 경제 양극화의 심화로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전체적인 문화수요는 움츠려들고 있다.
◇보는 사람 늘어야 문화시장 커진다=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해 문화복지사업을 다각적으로 펴고 있다. 장수군을 모범사례로 삼아 ‘작은 영화관’을 오는 2017년까지 90개로 늘리기로 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문화 바우처’ ‘신나는 예술여행’ ‘재능 나눔 버스’ ‘도시공원 예술로’ 등 다양한 정책들이 선보였다.
하지만 더욱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영화나 공연ㆍ미술 등의 문화는 한번 본 사람이 또다시 보게 되는 시장이다. 올 들어 베이비붐 세대인 50대의 영화관객이 크게 늘어난 것도 어린 시절 영화를 봤던 경험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가 문화 양극화 해소에 적극 나서고 기업들의 기부가 많아져 문화를 경험한 사람을 늘려야 문화시장이 살아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문화예술의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도 절실하다. 대중을 문화예술로 이끌기 위해서는 생활주변에 관련 시설이 들어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입장료를 과감히 낮추는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
국민의 문화향유가 늘어나면 사회통합과 혁신을 화두로 하는 창조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수록 첨예한 사회갈등, 자살률이 낮아질 수 있고 문화생활 속에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혁신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탁용석 CJ E&M 전략지원담당 상무는 “정부가 소외자들에 대한 문화지원을 더욱 확대하고 기업도 도네이션을 통해 문화 이용자를 늘려야 한다”며 “결국 이런 것이 문화산업의 파이를 키우고 나아가 사회통합, 창조경제를 활성화하면서 파이를 크게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의식개선과 재정지원 선결돼야=전문가들은 양적 개선뿐만 아니라 질적 개선이 이뤄져야 진정한 의미의 문화격차 해소가 이뤄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문화정책 담당 정부 공무원의 인식개선과 문화 인프라 활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는 얘기다.
경남의 A군청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민이 원하는 문화수요가 다른데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시책을 정하고 무조건 따라 하라고 하면 지역민의 요구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며 지자체의 자율성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연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전문인력의 공급부족과 공연장 운영주체가 너무 많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형 공연장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내 문화예술 공연장은 대부분 지원조직과 사업조직으로 꾸려지는데 예산ㆍ회계ㆍ인사를 담당하는 지원조직은 파견공무원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아 문화시장에 맞는 탄력적인 운영이 어렵다”고 말했다.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는 “새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창조경제는 융복합을 핵심 키워드로 하는데 문화산업이야말로 대표적 융복합 산업인 만큼 문화를 잘 융성하면 창조경제로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의 기반 위에 문화산업을 적극 키우면 영국 못지않은 창조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