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100세 시대] 여몽과 고령화

거부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 공통점
자아실현 등 비재무적 노후준비 필요

서동필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

중국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장수 여몽(呂蒙)은 두 가지 일화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신으로까지 모셔지기도 하는 촉나라 장수 관우를 죽인 인물이 다름 아닌 여몽이고,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도 여몽이다.

단지 관우를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기만성형의 전형적 인물로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인물이 바로 여몽이다.

여몽은 무예에는 처음부터 능했지만, 학문에는 약했다. 하지만 주군 손권의 "학문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한마디에 전쟁터에서도 책을 놓지 않아 매우 짧은 기간에 놀랄만한 학식을 갖추게 됐다. 이 일화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괄목상대다. 학식이나 재주가 짧은 기간에 크게 발전했을 때 쓰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도 '괄목상대'가 아닐까. 눈을 감았다 뜨면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기존의 것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시대다. 그중 하나가 노인 인구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다.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7% 이상)에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14% 이상)로 넘어가는 과정이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길게는 100년 이상 짧게는 40여년에 걸쳐 진행됐지만, 우리나라는 불과 20년도 안되는 사이에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던 우리나라는 2018년이면 고령 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괄목상대에서 뜻하는 발전의 과정은 아닐지라도 매우 짧은 순간 나타난 커다란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고령화 초기과정이 우리나라에서는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 등은 이미 이 과정을 지나 지금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그 한 단면이 노화를 대하는 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노화를 방지하고 최대한 늦춰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순응하면서 성숙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노화를 인식하고 있다. 노후준비 과정에서도 우리는 아직까지 재무적인 측면, 즉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는 측면이 크지만, 미국은 자아실현과 관련한 욕구가 커지면서 자아 독립을 추구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미국은 재무적인 준비뿐만 아니라, 건강과 여가·관계 등 행복과 관련한 다양한 측면을 동시에 노후준비 영역에 넣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령화 과정이 워낙 압축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이에 대한 준비와 대응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단순히 재무적인 준비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복에 필요한 다양한 비재무적 욕구 역시 동시에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욕구 구조상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가 달성되면 좀 더 고차원적인 가치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노후준비도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재무적 준비뿐만 아니라, 자아실현 등 가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비재무적 준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고령화는 여몽처럼 양면을 가지고 있다. 여몽이 관우를 죽임으로써 심정적으로 미움의 대상이 되듯, 고령화 역시 단지 늙어간다는 것 때문에 심리적으로 거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몽의 본래 자질과 사람됨은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듯, 고령화로 인해 길어진 시간은 이제껏 잊고 살았던 나 자신을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