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의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최근 한 고액 예금자와 해지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지난해 3월 연 4.0%에 4억원을 예금했던 이 고객이 만기일을 두 달 앞두고 중도해지하겠다고 한 탓이다. 세법 개정안에 따라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2,000만원(종전 4,000만원)으로 낮아지자 이를 피하겠다는 것이었다. 지점장은 해지비용이 세금증가분보다 많다며 만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결국 중도해지하며 원금의 1.5%인 600만원의 이자만 건졌다. 그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 지불한 비용은 1,000만원(해지 수수료 2.5%)이었다.
세법이 급속히 바뀌자 해지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과세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려는 슈퍼리치(현금성 자산 10억원 이상)들이 부쩍 늘고 있다. 수익률과 절세를 모두 포기하더라도 과세 대상으로 노출되는 것 자체를 피하기 위해서다.
22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현재 AㆍB시중은행의 5억원 초과 계좌(요구불+적립식+거치식) 수는 2만8,717좌로 지난해 말 대비 747개, 잔액 기준으로는 1조4,449억원 줄었다. 2개 은행에서만도 슈퍼리치들이 연초 이후 일평균 53개 계좌와 1,032억원을 빼내간 셈이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일부 자산가들은 소득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 극심한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킨다"며 "이들은 이성적(수익률)으로 생각했을 때 손해가 불을 보듯 뻔한데도 노출 자체가 싫어 중도해지 수수료를 물면서까지 예금을 빼가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과세자로 등록될 경우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의료비용도 부담이다. 보유재산은 없지만 금융소득이 연 2,000만~4,000만원인 전업주부의 경우 월 14만~20만원의 건강보험료 부담이 발생한다. 배(금융소득)보다 배꼽(건강보험료)이 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