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栽雨(한국경제연구원)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을 수혈받은지 1년이 다 돼간다. 아직도 수많은 기업들이 스러지고 있고, 실업행렬은 늘고만 있다. 최근 긍정적인 평가도 일부 나오고 있으나, 아직 우리 경제는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정부는 여전히 정부만능의 신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간 빅 딜(대규모 사업교환)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20~30여년전의 산업합리화 조치의 재판이나 다름없다. 개발연대에는 쾌도난마로 밀어붙이는 관료가 추진력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최근 관가에서는 다시 이런 부류의 관료들이 득세하고 있다.
기업들의 숨넘어가는 아우성은 이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기업 구조조정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구조조정은 기업가치를 회복하는 작업이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정부가 구조조정의 내용까지 간섭해서는 안된다. 더군다나 정부가 정한 일정까지 뒤짚는다면 누가 정부를 믿고 따를 것인가. 금융감독위원회는 최근 3단계 대기업 구조조정론을 들고 나왔다. 기업집단을 전문화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를 위해 주력업종이 다른 계열사에 서 준 지급보증을 금년말까지 모두 해소하라고 주문했다. 당초 2000년말까지 없애도록 한 정부 방침을 스스로 번복한 것이다. 무리하게 추진했던 업종 전문화정책이 작년초에 슬그머니 폐기된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전문화가 좋은지, 다각화가 좋은지는 정부가 판단하기 어렵다. 정부도 경제운용의 한 주체로서 가치판단은 할 수 있다.
만약 전문화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면 강제로 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전문화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이다. 지금처럼 반강제적인, 밀어붙이기식 구조조정은 오히려 기업가치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IMF 덕분에 우리경제는 제도상으로 완전한 개방체제로 접어들었다. 이제 정부도 열린 시대에 걸맞게 열린 사고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기업단체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는 보기 싫다며, 아예 덮어버린다고 호언하는 관료도 보았다. 기업들의 우는 소리는 듣기 싫다는 것이다.
기업의 목소리를 흘려버리기 보다는 그 속에서 현장감있는 정책을 발굴해내야 한다. 물론 이윤추구를 업으로 하는 기업의 목소리는 사익(私益)추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사익추구 행위가 시장을 통해 공익에 기여한다는 것이 시장경제의 명제 아닌가. 기업인에게 공익적 사고를 기대하지 말자, 기업인에게는 이윤을 남기고 기업을 영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사회에 봉사하는 최고의 덕목이다.
기업으로부터 나오는 건의는 「윈·윈(WIN·WIN)」의 속성이 있다. 불법행위가 아닌 한 귀담아 들어도 좋을 아이디어가 많다는 것이다. 기업을 바라보는 인식이 우리처럼 척박한 나라는 없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업이 발전하고 성장하지 못하면 경제는 지탱하기 힘들다. 투자와 고용창출의 주체는 궁극적으로기업이 아니던가. IMF 이후 신규 투자를 고려하는 기업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 투자는 본질적으로 위험을 수반한다. 실패도 한다. 실패한 투자보다 성공한 투자가 많으면 그 나라 경제는 성장한다.
투자를 죄악시하는 경제는 성장의 가능성 조차 없다. 실패한 투자만 침소봉대하여 모든 기업인을 과잉투자의 주범으로 몰아붙인다면 어떻게 투자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경제회복을 위한 기초(펀더멘탈)는 기업인의 기와 의욕을 실리는 것이다. 경제회복의 척도는 기업인을 대하는 관료들의 태도다. 지금처럼 기업인 무시하기를 자랑삼는 관료들이 득세하는 한 경제회복의 길은 더욱 멀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