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본 부장<정보산업부>
“달을 볼 때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목표는 달이지 손가락에 있지 않다.” 성철 스님이 1967년 합천 해인사 법문에서 했다는 이 말은 고려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문에 나오는 指月不分 未忘名聞利養之心(지월불분 미망명문리양지심)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통틀어 여전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보는 見指望月(견지망월)의 행태가 만연해 있다. 그래서 중국 역사서인 한비자에도 모순(矛盾·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되지 아니함)이라는 말이 나왔겠지만 세상은 요지경이다.
우선 남북관계의 경우 개성공단에서 보듯이 남북이 경제협력에 나서면 상호 이익이다. 그런데도 2010년 금강산 박왕자씨 피살 이후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는 교류협력이 사실상 올스톱됐다. 추석 이후 제한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예정돼 있지만, 뭉치는 것은 고사하고 군사적 충돌도 적지 않았다. “남북이 적대적 공존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비판을 100% 수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남북 교류협력의 장점은 수 백가지는 금방 찾을 수 있다. 독일처럼 언젠가는 흡수통일 확률이 크다는 점에서 사전에 협력적 공존관계의 틀이 필요하다. 여권 수뇌부가 중국에 북핵 해결의 리더십을 요청하기 전에 주도적으로 70년 분단체제의 전환 모색에 나설 때다. 자칫하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가난한 이웃은 돌보지 않고 근엄한 표정으로 기도만 하고 있구나”라고 했던 질타를 받을 수도 있다.
정치를 봐도 보수(保守)세력 중에서 왼손인지 오른손인지만 따져 자꾸 편가르기 하려는 수구(守舊)가 적지 않다. 사회통합을 해칠 뿐이다. 정치학 책에서는 보수는 민족주의로 분류되는데 우리는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된 결과, 오히려 민족정기 회복에 딴지를 거는 넌센스도 발생하고 있다. 정옥임 전 새누리당 의원은 “페이스북 친구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保守의 보수(補修·낡은 것을 보충하여 고침)와 통일 등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보수에서도 이런 노력이 늘어나야 한다.
분당의 조짐을 보이는 야당을 봐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분열=필패”라는 게 상식인데 친노로 대변되는 문재인 지도부는 포용과 통합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비주류는 원심력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야당을 질책하는 현실을 뼈아프게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으로는 경제활성화를 외치기는 하는데 천정부지로 치솟는 추거비와 교육비를 잡지 않고 어떻게 가계 소비를 살리고 출산율을 높이고 기업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창조경제를 한다면서 정치·사회는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첨단 ICT(정보통신기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카지노 시장이나 불법 화상경마, 고급 술집 등 자영업자와 전문직의 탈세가 여전하고 세금 한 푼 안내는 국민이 40% 가량이나 되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 구글 등 한국에서 거액을 벌면서도 세금 한 푼 안내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인터넷 IT 강국으로 자부하지만 실상 미국과 중국의 IT기업들에게 주도권을 다 뺏기고 있는 것도 안타깝다.
국방의 경우에도 국회에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군사비(내년 한국 39조원, 일본 50조원)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해·공군을 중심으로 전력차이가 엄청나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교육도 공교육 살리기와 학교폭력 근절 등에 초점을 맞춰 매진하면 되는데 수 천가지나 되는 대학 입시 등으로 사교육을 조장하고 학교폭력은 더 흉포화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범죄자 등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여전하고 극악무도한 범죄자도 사형시키면 안된다는 논리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무시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우리 말의 70% 이상이 한자어인데도 학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지 말자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돌리려는 것도 시대 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중국·일본과의 역사전쟁에서 협상력을 떨어 뜨리게 된다. 중국 눈치 보느라 광화문에 광개토태왕의 동상 하나 설립하지 못하는 것도 상식 이하다.
성철 스님은 1981년 초 조계종 종정 취임 법문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며 세태를 일갈했다. 진리를 똑바로 보고 듣자는 뜻일 게다. /kbg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