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석학에 듣는다] 우라타 슈지로 교수
입력 2002.01.03 00:00:00
수정
2002.01.03 00:00:00
미국의 기록적인 호경기가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로 인해 끝을 맺은 데 영향을 받아 21세기 세계경제는 감속 추세로 시작됐다.그런 가운데 지난 9월11일에는 미국에서 동시테러가 발생,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소비심리가 얼어붙음으로써 미국 경제는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세계경제 역시 한층 둔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세계경제의 감속은 수출의존, 특히 미국에 대한 IT제품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경제성장에 피할 수 없는 걸림돌이 되었다.
일본경제는 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무너진 데 따른 후유증에 시달려 90년대 내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저성장을 기록했다.
그 배경에는 정부가 적절치 못한 거시경제정책을 시행한데다, 성장궤도에 오르기 위한 불가피한 구조개혁이 저항세력의 반대에 부딪쳐 번번이 지연된 점 등이 작용했다.
2001년에는 구조개혁을 간절히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고이즈미(小泉) 정권이 출범, 일정 수준의 진전이 이뤄지기는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개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저항세력의 거센 반발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한편 한국 경제는 아시아 위기를 딛고 V자형 회복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IT제품을 비롯한 수출 감소와 금융개혁 등의 지연으로 말미암아 저성장에 빠진 상태다.
20세기 말에는 인력과 물품, 자금, 정보가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이동을 시작함에 따라 세계경제의 글로벌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경제의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은 규제의 완화ㆍ철폐와 무역ㆍ투자자유화 등 정책의 변화와, IT혁명으로 상징되는 놀라운 기술혁신에 의해 국제경제활동에 드는 거래비용이 크게 낮아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리제이션이 진전됨에 따라 경제 성장을 규정짓는 요인으로서 경제의 대외개방도가 크게 중시되기 시작했다. 개방도가 높은 국가는 인력이나 물품, 자금, 정보를 자유롭게 들여옴으로써 경제성장을 실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글로벌리제이션의 일선을 맡고 있는 다국적기업은 대외개방도가 높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는 나라에 활동 거점을 두려 하기 마련이다.
다국적기업 유치에 성공한 나라는 고도의 기술과 경영노하우를 이전받는 것은 물론, 판매와 조달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경제활동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또 다국적기업의 시장 참여가 치열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효율도 높아지게 된다. 다국적기업의 진출은 이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경제성장을 가속화시킨다.
그런데 이처럼 경제성장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경제의 대외개방이 중요해지고 있음에도 불구, 일본과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개방도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일본경제연구센터가 세계각국의 대외개방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아시아 각국 등 총 31개국 가운데 일본과 한국의 경제개방도는 각각 27위와 25위로, 양국보다 개방도가 낮기로는 인도와 중국 등 몇몇 나라만이 꼽히고 있다.
근래 일본과 한국이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같은 수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양국이 얼마나 대외개방 면에서 뒤지고 있는지 나타내는 한편, 양국에는 앞으로 개방이 진행됨에 따라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1년 11월 카타르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는 2002년 1월 WTO 신라운드의 출범이 결정됐다. 하지만 WTO 회원국의 증가, 교섭 사항의 어려움 등을 감안하면 자유화 교섭이 쉽지 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WTO의 다각적인 무역자유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자유화를 추진하는 수단으로서는 양국간ㆍ역내 무역자유화를 지향하는 지역무역협정(RTA), 그 중에서도 규정이 완만한 자유무역협정(FTA)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90년대 중반 이후 다각적인 무역교섭이 좀처럼 진전되지 않은 와중에서도 자유화에 따른 이익을 누리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 수많은 FTA가 설립됐다.
지금까지 GATT/WTO에 통고된 RTA는 200건이 넘는데, 그 중에서 실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약 140건에 달한다. 특히 유럽이나 북남미 에서 RTA 체결이 두드러지며, 중남미 국가, 중유럽ㆍ동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RTA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역내뿐 아니라 지역간 RTA도 구축되는 추세다.
그 가운데 동아시아에서는 최근까지도 아세안자유무역지역(AFTA)만이 유일한 RTA였을 뿐, 일본이나 한국, 중국 등 주요국들은 전혀 참가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WTO의 다각적 무역자유화가 진전을 보이지 않고 다른 지역에서 수많은 RTA가 설립되기 시작하자, 동아시아 각국에서도 RTA 설립의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은 2002년 4월에 싱가포르와의 FTA가 발효되는 것 외에도, 한국, 멕시코, 칠레, 캐나다 등과의 FTA가 검토되고 있다. 한국은 칠레와의 FTA교섭을 시작한데 이어 일본과의 FTA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를 하고 있다. 중국은 ASEAN과 10년 이내 FTA 체결을 목표로 교섭을 벌일 예정이다.
WTO내 다각적 무역자유화가 가장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현 상황에서는 RTA를 통한 무역자유화가 경제성장의 주요 수단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1차대전 이후 폐쇄적인 지역블록이 형성된 것이 2차대전의 하나의 방아쇠가 됐다는 반성에서, 지역화가 세계무역 자유화에 거스른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RTA가 개방적인 결정이며, 세계무역 자유화에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다만 한가지 중요한 것은 RTA에 대한 GATT/WTO 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분야에서 자유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이 노동이나 자본 등 자원을 비효율적인 분야에서 효율적인 분야로 이동시킴으로써 실현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는 저성장으로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다. 양국 경제의 활성화 및 성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활발한 경쟁을 일으키는 경제자유화정책이 불가피하다.
경제자유화를 위한 하나의 주요 수단으로 FTA를 들 수 있다. 여러 나라들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우선은 인근 아시아 국가들과의 FTA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본ㆍ한국의 FTA를 향한 움직임은 한때 고조되는 분위기였지만, 무역자유화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는 산업계의 반대에 부딪쳐 열기가 식어버린 것 같다. 양국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하루속히 FTA를 체결해야 한다.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주변 국가들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FTA 움직임이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은 그 추세에서 뒤쳐지고 있다. 자유화는 단기적으로는 실업 등의 문제를 야기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인 자원 이용을 통해 단기적인 손실을 메우고도 남는 이익을 낳는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실업자에 대한 사회보장과 재교육ㆍ재훈련을 제공함으로써 단기적인 비용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장기적인 이익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한 경제정책과제로 남게 된다.
이 같은 메커니즘이 정비된다면, 남는 문제는 자유화 반대세력을 잠재우는 정치지도자의 결단력이다. 경제가 처한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고, 장차 활력과 경쟁력으로 가득찬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영단(英斷)이 양국 정상들에게 기대되는 바이다.
◆ 우라타 슈지로 교수 약력
▲ 게이오대학 경제학부 졸업
▲ 미 스탠포드 대 경제학박사
▲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 현 와세다대 사회학부 교수(국제경제학 전공)
▲ 현 일본경제연구센터 연구원
▲ 현 경제산업연구소 패컬티 펠로우 겸임
▲ 일본정부, 인도네시아 정부, 세계은행, 아시아 개발은행 등의 고문 겸임
▲ '국제경제학 입문'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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