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원화절상과 경상수지 흑자가 공존하는 '일본형 불황'을 닮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업이 국내 투자보다 값싼 해외 투자를 늘리면서 국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는 악순환이 나타날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다.
5일 LG경제연구원 이창선 연구위원과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이 발표한 '빨라진 원화 강세 한국 경제 위협한다'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상황은 1980년대 후반 일본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당시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절상이 진행됐지만 수입이 늘지 않으면서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장기화했다.
경상수지 흑자와 엔고가 공존하면서 일본 기업은 TVㆍ자동차 등 주력 부문의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했고 이 과정에서 국내 투자와 고용ㆍ생산이 위축되면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다. 이창선 연구위원은 "이는 일본의 1990년대 이후 장기 저성장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 역시 일본의 전철을 밟아가는 모습이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수입의 가격탄력성이 높지 않고 ▦원자재 가격이 하향안정 기조를 보이며 ▦해외 투자가 계속 늘어난다는 점이 1980년대 일본과 유사하다고 비교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입에서 원자재 비중은 2000년 50.8%에서 지난해 63.2%로 높아졌는데 가격탄력성이 큰 소비재 수입 비중은 10%에 못 미친다. 원화가치 절상에 따른 수입물량 증대 효과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또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해외 직접투자 증가율은 6.9%로 국내 투자(5.4%)보다 높다.
보고서는 내년 초 환율이 1,000원대 초반까지 하락할 수 있는 만큼 정책 당국이 장기적인 경상수지 흑자 축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 내수 부문의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빠른 원화절상을 막는 방안"이라며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국내 투자 여건을 가시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