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선종] 삶과 신앙

'시골뜨기 신부'가 한국사회 '정신적 지주' 로
스물아홉에 사제서품 1969년 국내 첫 추기경 임명
군사정권과 충돌도 불사… 민주화 운동 구심 역할
1998년 은퇴후엔 '옹기장학회' 설립 북한선교 노력


[김수환 추기경 선종] 삶과 신앙 '시골 신부'가 한국사회 '정신적 지주' 로한때 장사꾼 꿈꾸다 부모 신앙 힘입어 사제의 길로1969년 최연소 추기경에… 70~80년대 민주화 구심 역할1998년은퇴후엔 '옹기장학회' 설립 북한선교 노력 장선화 기자 india@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5월8일(음력) 대구시에서 부친 김영석(요셉)과 모친 서중화(마르티나)의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박해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톨릭 복음을 받아들인 조부는 1868년 무진박해 때 충남 논산군 연산에서 체포돼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됐다가 감옥에서 아사(餓死)했다. 유복자로 태어난 부친은 성장한 뒤 영남 지방으로 이주해 옹기장사를 하다가 혼인한 뒤 대구에 정착했다. 가톨릭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옹기장이 아버지를 따라 떠돌며 자란 탓인지 김 추기경의 어릴 적 꿈은 장사꾼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꾼이 되려던 그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성소(聖召)를 받는 아들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부모의 깊은 신앙의 결실로 넷째 형인 동환과 자신이 사제의 길을 걷게 됐기 때문이다. 모친의 희생과 사랑에 힘입어 동환과 수환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보통학교 5년 과정을 마친 김수환은 1933년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해 성직자로 나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서울의 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에 들어갔다. 김수환은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한 해인 194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 조치대학(上智大學)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다. 이 무렵 청년 김수환은 성직의 길보다 항일 독립투쟁에 마음이 더 끌렸지만 1944년에 들어서면서 모든 상황이 변했다. 당시 졸업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던 김수환은 일제의 강압으로 학병에 징집돼 도쿄 남쪽 후시마섬에서 사관 후보생 훈련을 받아야 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무모한 탈출을 감행하다 미수로 그친 적이 있었지만 김수환은 이듬해 전쟁이 끝나면서 조치대학에 복학해 학업을 계속하다가 1946년 12월 귀국했다. 이듬해 서울의 성신대학(가톨릭대 신학부)으로 편입한 그는 4년 뒤인 1951년 9월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됐다. 한국전쟁 와중에 장차 한국 가톨릭회의 버팀목이자 시대의 거목이 될 한 명의 사제가 탄생한 것이다. 그가 사제 서품을 앞두고 고른 성구는 시편 51장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였다.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1956년 독일 유학길에 오른 김 추기경은 뮌스터대학에 적을 두고 7년간 그곳에 체류했다. 귀국 후 가톨릭시보사(현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지내며 교회 언론의 초석을 다지던 그는 1966년에는 신설된 마산교구의 초대 교구장 임명과 동시에 주교품을 받았고 그로부터 2년 뒤 서울대교구장에 서임됐다. '시골뜨기 주교'에서 일약 한국 가톨릭의 중심인물이 된 김 추기경은 이후 30년 동안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현대사의 한복판이 됐던 명동성당에서 한국사회의 영욕을 몸소 겪었다. 그는 이듬해인 1969년 우리나라 최초로 추기경에 임명됐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 전세계 추기경 136명 가운데 최연소자였다. 그러나 1970~1980년대 격동의 시대 속에서 세상과 교회를 돌보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1970년대 가톨릭교회와 명동성당은 유신정권에 맞서 싸우는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김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교회의 현실 참여는 옳은 방향이라고 여겼다. 그는 1971년 성탄 자정 미사에서 장기집권으로 향해가는 박정희 정권의 공포정치를 비판하는 강론을 했고 이듬해 8월에는 시국성명을 발표함으로써 박 정권과 충돌했다. 특히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때 명동성당은 권력에 맞서 싸우는 마지막 보루였다. 김 추기경은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던 학생들을 연행하려던 경찰 병력의 투입을 끝까지 막아냈다. 김 추기경은 교황청에 사임 의사를 밝힌 지 6년 만인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은퇴 이후 2002년 북방 선교에 투신할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옹기장학회를 공동 설립하는 등 북한선교를 위해 노력했고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너와 너희 모두를 위하여'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면서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바른길을 제시해온 김 추기경은 시대의 예언자로서 역할을 뒷사람들에게 남겨놓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 관련기사 ◀◀◀ ▶ 김수환 추기경 선종 ▶ 고 김수환 추기경 '마지막까지 베풀고 간 성자' ▶ "마지막 순간 '고맙다' 말씀 남기시고…" ▶ 고 김수환 추기경 어록으로 본 발자취 ▶ '김수환 추기경 선종' 생전 뜻따라 안구기증 ▶ '시골 신부'가 한국사회 '정신적 지주'로… ▶ 발인 때까지 유리관에 안치 ▶ 외신들도 "김수환 추기경 선종" 긴급 타전 ▶ "화보로 보는 김수환 추기경 발자취" ▶▶▶ 인기기사 ◀◀◀ ▶ 새 이동통신사 나온다… 휴대폰 요금 싸질듯 ▶ 중환자에 감기약 처방하는 '답답한 MB정부' ▶ 병사들에 월 1,380원 주고 생활품 사서 써라? ▶ 英 10대 출산 "엄마 하나, 아빠 셋?" ▶ 뉴욕엔 옐로캡… 서울선 '해치택시' 달린다 ▶ '만능통장' 좋은 줄만 알았는데… ▶ 확 바뀐 청춘남녀들의 '맞선' 공략법 ▶ 닛산, 스포츠 세단 '알티마' 출시 ▶ 구조조정 곧 착수… '절박감' 눈앞 ▶ 환율 급격히 오르는데 LPG값은… ▶ 미혼남녀에 물었다… "애인 감동 최고 비법은?" ▶ 자신도 모르게 아내와 이혼이 됐다면? ▶ 뜨거운 감자였던 '서머타임제' 도입한다는데… ▶▶▶ 연예기사 ◀◀◀ ▶ 김세아·서유정, 스타들 과거 폭로… 네티즌 '개념없다' ▶ 주현미-소녀시대 서현 '30세차 깜짝 듀오' 결성 ▶ 美 유명 스케이터 "김연아 내 이상형" ▶ 김세아, 자신 짝사랑한 배우 밝혔다가… ▶ 이지아, SBS 텔레시네마 '내 사랑 못난이'편 출연 확정 ▶ '꽃남보다 돈?' CF포스터 논란 ▶ "사고 때 다친 부위가…" 김범 재수술 아픔 ▶ '여사부일체' 홍콩 지상파에 뜬다 ▶ '무한도전 공주 구하기' 패러디 게임 인기 ▶ 탤런트 이민영 비방 악플러 '벌금형' ▶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 독립PD상 특별상 수상 ▶ 타블로 친형 데이브·오영실씨 'EBS 잉글리시' 진행자로 발탁 ▶ 던킨도너츠, '꽃보다 남자' 이민호 새모델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