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링 바깥에 있는 철수생각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안철수의 생각'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제목대로 이 책에는 안 원장의 많은 생각이 담겼다. 경제민주화ㆍ복지논쟁ㆍ한반도평화 등 거시 담론부터 입시전쟁ㆍ학교폭력ㆍ언론사파업 등 실시간 이슈까지.

많은 언론에서 지적한 대로 '안철수의 생각'은 민주통합당 등 야권의 그것과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지금껏 정치권에서 논의돼온 여러 정책의 장점은 취하고 문제점은 지적하는 것 정도다.

이를테면 경제민주화는 '재벌 개혁은 필요하나 해체는 아니다', 보편적 복지는 '방향성은 맞으나 재정을 보면서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 문제도 '인도적 지원을 해가되 퍼주기 논란은 안 된다'는 식이다. 민주당도 이와 같은 얘기를 부인하는 게 아니니 사실상 안 원장과 야권의 말은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안 원장의 얘기가 달리 들린다면 그것은 '링 위에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점에서 기인한다. 예컨대 대북 지원만 해도 정치권 내에서는 '인도적 지원'도 '퍼주기 논란'도 된다. 두 얘기를 같이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안 원장에 대한 국민 지지 대부분은 기성 정치 혐오로부터 시작됐다. 사실상 정치권 담론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얘기를 하면서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 같은 정치 불신을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다.

'안철수의 생각'이 차별화된 정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가 링 위에 올라 상대편을 맞이해야 한다. '인도적 지원을 해가되 퍼주기 논란은 안 된다'는 말이 어떻게 가능한 지를 자기를 견제하는 상대방 앞에서 설명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안 원장의 '집권 비전'이 담겼다는 '안철수의 생각'은 여전히 링 밖 관전자가 하는 한가한 얘기처럼 들린다. 정치를 안주 삼아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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