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화순군은 지난 2009년 500억여원을 들여 무려 75만5,000여㎡(지정면적 기준)에 이르는 화순생물의약단지 조성을 완료했다. 하지만 4년여가 지났는데도 분양률은 고작 51.2%다. 그나마 8개 업체가 입주계약을 했지만 2곳은 아직 공장 가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 경기 시화산업단지 일대에서 영업 중인 화학업체 A사는 최근 수년간 지방이전을 알아보다 단념했다. 여기저기 입지가 괜찮은 산업단지를 물색했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A사가 페놀 등의 화학물질을 다루고 배출한다는 이유로 입주자격조차 받지 못한 탓이다.
이상한 일이다. 기업들이 지방 등으로 이주하려 하는데도 땅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전국에 미분양 산업단지는 남아도는데 말이다.
산업단지 공급과 수요의 총체적 미스매치(불일치) 현상이 고질화된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세금을 깎아주고 재정지원도 해준다며 기업들의 지방이전만 채근해왔다.
산업입지의 이런 미스매치 문제는 최근에서야 주목을 받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와 지방 방문 자리에서 전국의 산업단지 입지 문제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게 기폭제가 됐다.
그렇다면 전국의 산업단지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서울경제신문이 4일 전국의 산업단지 현황을 분석한 결과 참여정부 출범 직전 488개였던 전국 산업단지 수는 약 10년이 지난 현재 두 배나 증가(1,000개, 올해 1ㆍ4분기 기준)했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이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해당 5년여간 단지 수 증가율은 무려 53.8%(650개→1,000개)였다. 규모(지정면적)도 약 63%(5억2,657만평)나 늘었다.
이 기간 늘어난 단지 대부분은 국가단지가 아닌 일반단지(옛 지방단지 등)와 농공단지다. 지방자치단체들과 지역구 의원 등이 지역민들의 표심을 사려고 경쟁적으로 단지지정을 남발한 것이 화근이 됐고 정부는 이를 사실상 방관했다.
지역별 특성에 맞는 맞춤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산업단지 개발권한을 정부에서 지방으로 이양해준 정책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된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아직도 일부 정치인들은 산업단지 개발권한의 지방 이양을 더욱 채근하고 있다. 예를 들어 10만㎡ 미만 산단은 인허가권을 광역지자체장으로부터 기초자치단체장으로 이전하자는 논의가 나왔을 정도다. 난개발 악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단기간의 공급홍수는 악성 미분양을 초래했다.
실제로 3월 말 현재 전국의 일반산업단지와 농공산업단지 중 분양이 완료되지 못했거나 미개발인 곳은 390개다. 그중 개발이 진행된 단지의 미분양 면적은 총 2,019만6,000여㎡(약 610만여평)에 이른다. 서울 송파구에 들어서는 위례신도시를 3개 정도 만들고도 남는 규모의 산업단지가 임자를 못 찾고 놀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이 중 125개는 아예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미개발'로 방치돼 있다. 화순생물의약단지처럼 부지조성이 끝나고도 미분양인 단지도 97개에 이른다.
이미 분양이 끝난 산단이라도 "조성된 지 오래돼 노후화되고 입주업종이 사양화돼 위기를 맞는 곳도 적지 않다"고 경기권의 한 광역자지치단체 간부는 설명했다.
신규단지 미분양과 노후단지 사양화를 동시에 해결하려면 입지규제와 각종 용도변경 준조세를 해소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산업단지분양전문업체 트라이에이드의 홍석윤 팀장은 "지자체는 자꾸 고급ㆍ첨단업종을 유치하려고 하지만 수도권보다 첨단 우수인력풀이 미흡하고 수도권ㆍ물류 접근성, 생활기반시설이 떨어져 첨단업종 기업들은 기피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작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가려는 기존 업체들은 기피업종이라는 둥, 유해물질업종이라는 등이 이유로 지자체가 꺼리니 서로 눈높이가 맞지를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애초 정부가 전국의 산업단지 입지를 전면적으로 조사해 업종별 특성에 맞도록 재설계하고 관련 인프라를 확충해줄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산업단지 전담 컨트롤타워를 마련하고 산업단지총량제를 도입해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을 필요도 있다. 한 대형은행의 기업센터 관계자는 "국가공단이 아니라 일반공단(지방공단 등)에 입주하는 기업에는 대출을 꺼리는 은행들의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