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산책] 박고석의 '범일동 풍경'

캔버스에 유채, 39.3×51.4㎝, 1951년작

바닥부터 하늘까지 누런 흙빛의 이곳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의 부산 범일동 철로변이다. 힘 있는 검정 윤곽선의 교차와 그림 가운데로 시선을 이끄는 아이 업은 엄마 등 사람들의 모습은 삶의 의지를 북돋운다. 문득 생명을 틔우는 흙빛에서 풍요로운 황금빛이 느껴질 정도로. 작가 박고석은 6·25전쟁이 터진 뒤에도 바로 피란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머물다가 1·4후퇴 때에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이 시기에 1951년부터 1년간 부산공고 미술교사로 재직하기도 했고 이중섭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현재는 '이중섭 거리'가 조성된 당시 범일동은 이중섭을 비롯해 김환기·한묵 등 여러 화가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기에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자주 다뤄지던 지역이었다. 박고석은 범일동 동천 위에 나무로 아틀리에를 지어 사용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올 때 동료 김경에게 물려줬다고 전해진다. 1954년 현대미술가 초대전에 출품된 이 '범일동 풍경'에는 어렵고 가난한 피란 시절에도 그림을 그리고자 노력한 작가의 의지를 알 수 있다. /글·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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