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급락행진 세계금융시장 적신호

1유로=90센트선 붕괴… 해외자금 美이탈 가능성미 달러화의 급락 행진이 이어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최근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심리적 지지선인 유로당 90센트선이 붕괴됐으며 엔화에 대해서도 120엔선이 무너졌다. 특히 달러화는 6개 주요 통화 바스킷에 대해 지난 7월 초 121.02를 기록하는 등 15년래 최고 수준을 기록한 후 최근에는 6% 이상 하락한 상태다. 국제외환시장의 관계자들은 달러화 급락 추세가 지속될 경우 해외자금의 미 자금시장 이탈이 러시를 이룸은 물론 인플레 압력 증가, 증시 침체 등 부작용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해외자금 이탈 러시 가능성 달러화 강세정책의 기조적 변화는 없다는 부시 행정부의 거듭된 확인에도 불구하고 달러화의 약세 행진이 지속되자 미국 내 달러화 자산에 투자한 외국계 투자가들이 흔들리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지속적인 금리인하 정책으로 미국 내 금융자산의 투자 메리트가 감소하고 있는데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상당한 환차손까지 입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달러화 약세가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미국 경제의 회복 가능성이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는데다 FRB의 금융완화 정책이 이어지는 등 구조적 요인에 의해 상당기간 약세 기조를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서는 이미 달러화가 정점을 지났기 때문에 미국 내 금융자산에 투자됐던 외국계 자금의 유출 러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 내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외국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게 되면서 달러화에 대한 선호도 역시 급속히 사그러들고 있다. 실제 메릴린치가 지난 12년 동안 실시해온 세계 채권투자자 서베이 자료에 따르면 최근 달러화 자산에 대한 선호도는 데이터가 집계된 후 세번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화 급락에 따른 자금 유출 압력이 갈수록 커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 증시 침체 등 부작용 확산 우려 커 현재 미국 내 금융자산에 대한 외국계 자금의 보유분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3% 수준인 73조3,00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90년의 33%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미국 내 금융자산에 대한 외국계 자금의 비중이 높은 상태에 급격한 자금 이탈이 이뤄질 경우 세계 금융시장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달러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 압력이 새로운 이슈로 부각, 금리인하 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는 FRB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 또한 외국계 투자가들이 일시에 자금을 회수할 경우 주식 및 채권가격은 더욱 떨어지게 되고 이는 또다시 달러화 약세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이어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기업의 신용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태에 달러화 약세에 따른 회사채(달러화 표시) 수요까지 줄어들 경우 기업들은 실적부진에 이어 자금조달에 있어서도 타격을 입는 등 설상가상의 형국이 빚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달러화 정책 부재도 문제 달러화 급락을 둘러싼 우려가 증폭되는 데는 부시 행정부의 달러화 정책 부재에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강세든 약세든 정책적 기조가 서 있을 경우 부정적 파급 효과를 최대한 차단할 수 있지만 혼선이 지속되면 불안 가중에 따른 역효과만 양산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1일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포문을 연 후로 강한 달러 정책에 대한 학계 및 재계의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 달러화는 최근 급락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유로나 엔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20~30% 고평가돼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금리인하 및 감세정책이 경기부양 효과를 내지 못하자 미국이 환율정책 변경을 검토, 이미 강한 달러 정책에 수정을 가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특히 강달러 정책 포기를 공식 선언할 경우 해외자금이 급격히 유출될 가능성이 있어 비밀리에 추진 중이며 이를 위해 국제투자은행들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추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당초의 강달러 기조 유지를 천명하면서도 시장에 대해 한발 물러서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등 여전히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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