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내수경기 침체와 원자재가 급등,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등으로 3중고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들이 추석이 끼어 있는 9월에 접어들면서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고 있다.
매출은 시원찮고 은행 문턱도 높아져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못지않게 자금을 융통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불황 늪에 빠진 업체 직원들도 잇단 '감원ㆍ도산 공포'에 떨며 추석 상여금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회사에서 잘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이들의 작은 소망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중소기업 경영난으로 올들어 지난 7월까지 6만2,000개 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 17만6,000여명이 6,143억원의 임금체불로 고통을 받았다. 근로자들이 받지 못한 임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 5,211억원에 비해 17%나 증가했다.
휴대폰 케이스를 사출하는 D사는 사규로 보장된 추석 보너스 지급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주거래처인 텔슨전자의 부도 등으로 주문이 끊기다시피 해 공장라인까지 멈춘 상태다. 양방향 TV를 생산하는 C사의 경우 추석을 앞두고 긴장감마저 감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0만~30만원 수준의 '떡값'을 줬지만 올해에는 떡값은커녕 차비도 못 줄 형편이다. 직원들도 감원 얘기가 나올까봐 눈치만 보는 분위기다.
인천 남동공단의 한 가구업체 직원은 "극심한 내수침체로 주변 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상당수 직원들을 내보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상여금은 고사하고 구조조정당하지 않고 월급이라도 받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형편이 그나마 나은 편인 자동차용 볼트 생산업체 Y사도 자금사정이 어려워져 추석 보너스를 절반씩 두 번에 나눠 지급하고 해마다 나눠주던 선물세트는 생략하기로 했다.
이 회사 이모 사장은 "명절 때 설비수리까지 해야 할 판이어서 직원들 볼 낯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소형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B사 사장도 "수출로 웬만큼 매출을 내고 있는데도 담보를 요구, 추석 연휴 때 직원들에게 떡값이나 제대로 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높은 은행 문턱을 원망했다.
사무용 가구를 생산하는 A사 사장은 "은행들이 '입'으로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등을 돌린다"며 "돈을 융통할 방안을 마련할 수 없어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건축자재를 판매하는 C사 사장은 "건설경기 침체로 현금을 주던 업체는 15~20일 만기 어음을, 3개월짜리 어음을 주던 업체는 4~5개월 만기 어음을 주는 등 결제조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내년에는 중소 건설업체들의 부도가 잇따를 것"이라며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