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는 부동산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융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는 것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DTI 규제는 신용위험 발생 가능성을 크게 낮출 뿐더러 대출자들이 돈을 갚는 시기를 분산시켜 전반적으로 금융시스템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석균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12일 ‘DTI 규제의 금융시스템 안정화 기능’ 보고서를 통해 “금리 구성이나 상환 방식 만기구조 등의 측면에서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시장은 외부충격에 여전히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서 “DTI 규제는 금융 안전성 확보에 필수적인 정책 수단”이라고 밝혔다.
허 위원은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은 만기가 짧고 변동금리형 대출이 많아 금리 등 외부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면서 “투기지역에 대해 40%, 그 외 지역에 60%의 상한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DTI 상한이 미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금융 선진국의 대출 관행은 개인별 자산 현황이나 주택 보유의 목적, 고용 형태, 대출금 실질상환 여력 등 재무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결정하는 신용평점 방식이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부채비율 혹은 담보 가치 위주의 대출심사에 의존하고 있어 대출자의 신용위험에 상대적으로 크게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따라 “대출자의 채무상환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신용평점 방식이 정착될 때까지는 금융 안정성 확보라는 정책목표하에 현행 DTI에 대한 규제는 유지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허 연구위원은 특히 최근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자 건설업계와 한나라당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DTI 등 대출 규제를 풀어 부동산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부동산 침체를 극복하려는 목적으로 DTI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단기성과를 위해 장기 안정성을 포기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