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크림반도가 결국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보일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푸틴 대통령은 친러 성향의 크림 자치공화국이 친서방 움직임을 보인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 반발해 분리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적극적인 개입 정책을 추진했다. 일단 푸틴은 1954년 잃었던 크림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크림 병합은 군사력을 앞세운 푸틴 대통령의 과감한 공세로 가능했다.
서방은 푸틴이 이 여세를 몰아 다수의 러시아 주민이 살고 있는 하리코프나 도네츠크 등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까지 넘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 지역에서도 친러시아계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크림처럼 자주적 지위를 결정할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움직임은 크림의 러시아 병합 절차 마무리를 계기로 더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중앙정부가 또다른 ‘크림반도’의 출현을 막기위해 초기부터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러시아에 개입할 소지가 있다. 이는 다시 우크라 동부 지역의 분리주의와 러시아 귀속 움직임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실현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 18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크림 병합안 승인을 요청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추가 합병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분열을 원치 않으며 러시아가 크림에 이어 다른 지역도 합병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우크라이나에게 크림반도와 우크라 동부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 붕괴 이후 사실상 자치공화국 지위를 유지해온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러시아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반면 다른 동부 지역의 러시아 귀속은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영토 통합성 붕괴와 국가 분열을 뜻한다.
우크라이나로서도 이런 사태 전개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부 지역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러시아로서도 크림 병합과 달리 통제 불능의 사태를 야기할 수 있는 동부 지역 병합 시도는 쉽게 엄두를 못 낼 일이다.
푸틴은 크림 병합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자신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다. 러시아가 정치경제적으로 전략적 이해를 가진 우크라이나가 서방 진영으로 완전히 편입되는 것을 두고보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푸틴은 서방이 이같은 러시아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맞대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푸틴은 지난 국정연설에서 러시아가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을 무기력하게 지켜봤던 예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용수철도 너무 누르면 튀어 오른다”며 서방의 옛 소련권 진출에 강경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크림 병합으로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향한 영향력 행사의 교두보를 확보한 푸틴 대통령이 이제 본격적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극단적 대결 국면을 이어가는 것은 어느 쪽에도 이익이 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으로서도 실효성이 떨어지고 쌍방 피해가 예상되는 제재 등 강경 대응보다 타협안을 찾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친서방 성향을 띤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와의 협상에서 크림의 러시아 병합을 인정하고 우크라이나가 지역적 다양성을 고려해 각 지역의 자치권을 최대한 인정하는 연방제를 도입할 것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 내 친러 세력의 목소리를 키우려는 포석으로서다.
동시에 친러 성향 정치 세력과 지역의 이익을 대표하는 인사들을 포괄하는 거국 내각 구성과 이러한 세력 대표들이 함께 출마하는 조기대선 및 총선을 치를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 우크라이나 과도 정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극우민족주의 세력 통제나 배제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EU에는 우크라이나를 서방 진영으로 더욱 깊숙히 끌어들이기 위한 EU-우크라 협력협정 체결이나 나토 확장 프로그램 추진 등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역사적, 경제적으로 러시아 및 옛 소련권과 밀접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권 통합을 용인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우크라이나를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비동맹 중립국으로 남겨두기 위한 조치다.
이 같은 제안은 이미 최근 러시아가 서방과의 막후 협상에서 제안했던 내용들이다. 서방은 지금까지 크림의 러시아 병합을 막기 위해 이런 제안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이제 우크라이나 사태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면서 서방도 러시아 측의 제안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