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부터 한·유럽(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됨에 따라 2조원대 규모의 국내 법률 시장을 놓고 국내 로펌과 EU 27개 회원국 로펌 간에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 사진=서울경제 DB |
|
한국 최초의 로펌인 김·장·리 법률사무소가 문을 연 해는 지난 1958년. 반세기를 갓 넘긴 우리 법무법인(로펌) 역사 동안 국내 유수 로펌이 안방에서 외국 굴지의 로펌과 경쟁을 벌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7월1일부터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보호무역 장벽 안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국내 로펌은 EU 27개국 회원국 로펌과 맞붙어 2조원대 규모의 국내 법률 시장을 놓고 한판 혈투를 벌여야 한다. 1958년 국내 1호 로펌 출범 이후 50여년 만에 유럽 최고 로펌과 국내 무대에서 'A 매치(국제 경기)' 첫 승부를 벌이게 되는 셈이다. 당장 미국과 함께 세계 법률 서비스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영국 로펌이 버거운 첫 경기 상대다.
세계 3대 로펌 중 하나인 영국 클리포드챈스는 한국 사무실 개소 준비를 끝내는 등 이미 출사표를 던졌다. 또 다른 영국 메이저 로펌인 앨런&오버리와 디엘에이파이퍼 등 영국 로펌 4~5개사도 한국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리포드챈스는 미국 법률전문지 아메리칸로이어가 수익을 기준으로 선정한 '2010년 세계 10대 로펌' 가운데 3위를 차지했으며 앨런&오버리는 6위에 올랐다.
과연 세계 최강의 변호사 군단이 버티고 있는 영국 로펌의 국내 공략 이후 우리 법률 시장의 판도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강훈 법무법인 바른 대표는 "한∙EU FTA가 발효되면 국내 로펌 시장에 큰 변화가 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단계적인 개방 절차가 끝나고 법률 시장이 완전히 EU에 개방되는 오는 2016년에는 국내 로펌 10위권에 적어도 해외 로펌 2~3개가 자리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오창 김앤장 변호사는 "독일의 경우 법률 시장 개방 이후 한때 로펌 순위 10위권에 8~9개의 외국 로펌이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면서 "5년 후 국내 10위권 로펌 리스트에 2~3개의 외국 로펌이 등장한다 해도 성공적인 방어로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3단계 과정 거쳐 2016년에는 법률 시장 EU에 완전 개방=7월1일부터 2년간 1단계 법률 시장 개방이 이뤄지고 2013년 7월과 2016년 7월 각각 2단계와 3단계 개방이 시작된다. 다음달 1일 한∙EU FTA가 발효된다 해도 유럽의 대형 로펌이 당장 국내에서 단독으로 사건을 맡거나 자문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단계 개방 시기에는 EU 로펌이 국내 분사무소를 설치할 수 있다. 2단계에서는 국내외 로펌이 사건을 공동으로 맡고 수익을 배분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외국 로펌이 국내 변호사를 보조로 내세운 뒤 사실상 모든 업무를 전담해 수익을 챙기고 국내 변호사에게는 형식적으로 수익을 배분할 수 있는 것이다.
2016년 3단계 개방 때는 해외 로펌의 거대한 쓰나미 충격을 맞을 수 있다. 법률 시장이 전면 개방돼 국내외 로펌 간 합작사업체가 국내 변호사를 고용하고 송무∙자문 등 모든 법률서비스를 해외 로펌이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자문 분야 잠식 우려 커=그렇다면 해외 로펌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했을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분야는 어떤 곳일까. 법조계에서는 국제거래와 인수합병(M&A) 등 기업자문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본다. 반면 국내 송무와 공정거래, 노동 분야는 상대적으로 해외 로펌 잠식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는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과 관련한 자문이나 해외 기업의 국내 사업과 관련된 자문 분야 모두에서 해외 로펌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법률 시장 개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 로펌의 M&A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로펌이 굵직한 자문 사건을 하나둘 빼나가면 국내 1~5위권의 이른바 '빅5' 로펌의 서비스 분야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수익 규모가 큰 기업자문 분야나 이른바 대기업 회장 등의 송무사건(송사) 업무를 다뤘던 '빅5'가 외국 로펌과의 경쟁에 밀려 10위권 밖의 중소형 로펌 영역을 잠식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로펌가에서는 해외 대형 로펌이 국내에 진출하면 이른바 '회장님 송사'를 도맡았던 국내 메이저 로펌이 해외 로펌에 밀려 '부장님ㆍ과장님 송사'를 챙기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