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차보고서를 만들때면 경영진의 사진을 찍느라 한번씩 법석을 벌인다. 이 사진 찍는일이 대개 아침 10시쯤 시작하면 12시가 넘도록 찍는 경우도 있다. 옛날에야 명함판 사진 보관한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대용하든지, 아니면 하얀 벽면에 몇 사람씩 세워두고 5~6분만에 끝나는 일을 얼마전에서 부터는 1~2시간씩 큰 작업이 벌어지게 된다. 우선 4~5명의 Team이 들이닥쳐서 분장부터 시킨다. 얼굴에 분을 포함한 갖가지 화장품을 바른 뒤 집에서 나올 때 나름대로 잘 손질하여 나온 머리를 자기들 멋대로 다시 재구성 하고는 촬영에 들어가는데 이것이 쉽지가 않다. 팔을 책상위에 올려라, 어깨를 조금 낮추어라, 턱을 좀 당겨라. 내몸이지만 사진 찍을 때는 마치 의사가 지시하는대로 철처히 몸을 움직여야 하는 환자 신세가 된다. 그런데 자세는 그렇다치고 가장 어려운 것이 표정이다. 분장이나 자세 같은 것은 이 표정을 위한 곁가지에 불과하고 표정을 잘 나오게 하기 위한 준비동작이나 다름없다. 사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도나 색상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물사진을 찍을 때는 이 표정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 보다. 그래서 자세교정을 끝냈다 싶으면 다음 작업이 표정관리로 들어가는데 이 표정 만들기는 여간 땀나는 일이 아니다. 자세야 지시하는대로 하면 되지만 표정이란 것이 웃으라 한다고 쉽게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 것이다. 웃음이란 하나의 생리현상 이어서 진정으로 우스운 일이 벌어졌을 때 자기도 모르게 활짝 웃는 것이지 억지로 나와지지 않는 성질의 것이 아닌가? 몇 년 전에 동창 4사람이 월간잡지에 사진 찍을일이 있어 전문 사진사를 대동하고 덕수궁을 찾은 일이 있는데 자연스런 웃음이 배여 나오지 않아 아마도 한 백장은 찍었으리라. 그때 그 기억에 의하면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이 일부러 웃는 일이라고 기억되는데, 사진 촬영을 위하여 웃음을 짓는 일이야말로 난사중의 난사에 속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연차보고서의 마지막 표정 촬영은 적어도 1시간은 계속되면서 안나오는 웃음을 쥐어짜며 그런대로 OK 싸인이 떨어질때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나고 마치 큰 행사를 무사히 치른 기분이 들 정도로 힘겨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뒤 제작된 연차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수십번을 찍어 겨우 생산해낸 그 스마일이 그렇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울 수가 없게 찍혀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은 잘 모르고 넘어갈지 몰라도 나의 표정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그것은 겉은 스마일이지만 실은 완전히 죽은 표정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 한창 잘 나가는 한 유명 사진작가는 400분의 1초의 순간 표정을 잡기 위하여 수십 컷트를 찍는데 그 표정을 잡기 위하여 스테이지를 차려놓고 사진작가 자신이 한바탕 연출을 하여 자연스런 표정을 유도해 낸다고 한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하여 억지로 웃음을 만들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경우에나 속 /강신철<경남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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