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해외매각, 경제회복세 불구 팔아치우기 급급

경영목적 아닌 차익겨냥 투기펀드에 돈대줘국내기업을 팔면서 외국기업에 인수자금을 대주는 '인수금융'은 정상적인 금융기법이긴 하다. 그러나 최근 국내은행들이 외국인 원매자들에게 주선하고 있는 인수금융의 모양은 매끄럽지가 않다. 돈을 댈 금융회사 모집에 애를 먹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금융거래가 아님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채권단이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들린다. LBO(Leveraged Buyoutsㆍ소수의 투자자들이 거액을 차입해 특정기업을 인수하는 기업매수 기법)방식이 아니어도 매각이 가능한지 여부를 꼼꼼히 검토해야 하며, 인수금융이 불가피하다면 최적의 조건으로 국내외 금융회사들을 폭넓게 끌어모아 시장이 인정하는 '굿 딜(good deal)'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무리하게 돈을 대주면서까지 기업을 매각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과 함께 정상화 가능성이 충분한 부실기업의 갱생 프로그램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매매차익 목적의 해외펀드나 투자은행들에게 인수금융을 지원하는 데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간에 쫓겨 기업을 처분하는데 급급했던 상황을 벗어난 만큼 금융회사들도 외환위기 당시의 타성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것이다. ◇ 한국은 세계 최대 LBO시장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 매각이 최대의 현안이 됐던 만큼 채권 금융회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외국인들에게 팔아 넘기는 데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투자자가 인수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한 후 기업의 이익금 등으로 차입금을 상환하는 LBO방식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매각한 굵직한 기업만 지난 99년의 만도공조, 2000년의 대우통신네트워크사업부문, 지난해의 해태제과, 가장 최근 진행중인 금호산업 타이어사업 부문에 이르기까지 10개 안팎에 이른다. 국내기업에 대한 LBO는 대개 주채권 은행이 인수금융을 주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최근 잇따라 대규모 인수금융이 진행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LB0 시장으로 부상했다. 특히 금호산업 타이어부문과 동양메이저 시멘트 부문의 인수금융은 모두 1조원 안팎에 달해 이 분야의 '세계 최대 거래'로 꼽히고 있다. ◇ 금융회사들 참여 꺼리는 인수금융 하이닉스 TFT-LCD 사업부문을 인수하는 캔두컨소시엄에 대해 조흥ㆍ외환은행이 2,600억원의 인수금융을 주선,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주선자인 두 은행이 각 750억원씩 돈을 대고 산업ㆍ한빛은행이 각 500억원, 현대해상이 100억원을 공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인수금융에 해외 금융회사들을 끌어들이지 못한데다 나머지 국내 금융회사들도 주간사들과의 평소 친분 때문에 마지못해 참여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점이 문제. 참여은행의 한 관계자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라면 돈을 댈 이유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산업은행이 주선하는 동양메이저 시멘트부문 인수금융 역시 거의 마무리됐지만 모양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1ㆍ2금융권의 10여개 금융회사들이 참여하는데 그쳤고 전체 9,500억원 가운데 산업은행이 5,0000억원 이상을 떠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사의 몫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금융회사들에게 인기가 없으며, 기업 인수자에게는 유리한 거래임을 의미한다. ◇ 필요하지만 신중히 검토해야 물론 인수금융지원을 통해 문제기업을 매각하는 일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규모의 인수자금을 지원함으로써 해당업종에 전문성이 있는 인수자를 선정해 기업이 회생할 수 있다면 최선의 선택이다. 문제는 우리 경제가 안정되고 있는 최근까지도 채권은행들이 관행적으로 인수금융을 통해 기업매각을 서두르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장기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인수에 나선 전문업체가 아니라 매매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펀드나 투자은행들에게 매입자금의 80%이상을 대주고, 그것도 거의 전액 국내 금융회사들끼리 돈을 모아주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대목이라는 것이다. 성화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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