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간의 가치기준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백성이 애국하지 않는 나라는 존립할 수 없고, 자식이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끼리 반목 불화 하는 집안은 망할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써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 윤리규범인 충성과 효도조차 나몰라라 내팽개치는 인간 말종들에게 다른 그 무엇을 기대하랴.
건강한 육신에 건전한 정신이 깃 들듯이 국민의 도덕적 무장이 튼튼한 나라가 장래도 밝은 법이다. 자비와 사랑의 미덕은커녕 저마다 헛된 이기심만 앞세우고 설치는 사회는 희망 없는 사회, 종말을 앞당기는 혼돈의 사회다. 인륜도덕과 충효사상이 땅에 떨어 질대로 떨어진 이 시대는 불신시대를 지나 패륜아들이 횡행하는 무서운 말법시대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웃에 대한 배려는커녕 부모 자식간의 관계조차 갈수록 단절되어가는 이 시대는 단순히 세태의 각박함을 넘어 가정이 분해되고 파괴되어가는 인간 정신의 공동화시대요 황폐화시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미 고령화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자식들에게 학대 받고 버림받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니 참으로 큰일이다. 서로 부모를 모시지 않겠노라고 악을 쓰며 싸우는 형제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어찌 그러면서도 `인생은 60부터`라는 소리를 할 수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은혜를 입는다. 제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도 어머니의 고통 덕분에 태어났고, 아버지의 고생 덕분에 자라났으니 그 은혜를 어찌 다 갚으랴. 시간의 흐름이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듯이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한번 태어난 이상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게 마련이다. 인간만사 무심한 강물의 흐름과 같다. 무정한 세월의 흐름과 같다. 앞 세대가 가면 뒷세대도 그 뒤를 따라 늙고 병들고 죽기 마련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고 병든 부모를 모시기 귀찮다고 욕설을 하고, 매질을 하고, 정신병원이나 무허가 기도원에 감금하거나, 또는 아예 찾아올 수 없는 먼 곳에 내다버리는 자식들, 심지어는 폭력을 휘둘러 죽여 없애는 극악무도한 패륜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하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연초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 1,3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노인의 37.8%가 자식에게 한차례 이상 매를 맞거나 모욕적인 말을 듣는 등 학대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특히 학대 당한 노인들은 아들과 며느리 등 자식들에게 매맞는 것보다도 `차라리 죽어버려라!`, `밥만 축 낸다!`는 따위의 폭언과 정신적 학대가 더욱 가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한다. 하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노인이 자식들에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학대를 당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옛말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고려하면, 자식들에게 욕이 돌아갈까 두려워 학대 당하고도 이를 숨기는 노인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서로 모시지 않겠다고 악을 쓰고 싸우는 형제들도 비일비재하다. 효도에 무슨 남녀의 구별, 맏이와 지차의 구별, 친부모와 시부모의 구별이 있을 수 있는가. 작은아들도 자식, 작은며느리도 모두 같은 자식이 아닌가. 자신도 늙어가면서, 자식을 기르는 입장에서, 사람의 탈을 뒤집어쓰고 어찌 이토록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타락할 수 있단 말인가. 부모의 은혜를 효성으로 갚기는커녕 불효를 넘어 패륜으로 보답하다니, 이러고도 어찌 인간이랍시고 떳떳이 얼굴을 들고 행세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 구실도 못하면서 어찌 사람대접을 받기 바라는가. 이런 짐승보다도 못한 패륜아들과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태어나 더불어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그지없이 환멸 스럽다.
세상을 더 이상 추악하게 만들지 말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해서야 쓰겠는가. 패륜시대 말법시대를 극복하여 적어도 제 자식들에게 물려줄만한 세상은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한 길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 가치기준- 효도정신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최소한의 염치조차 저버린 세상은 짐승의 세상이요, 더 이상 인간이 살아갈 가치가 없는 지상의 지옥이요 말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무나 당연한 상식과 이치를 새삼 강조해야 하는 세태가 너무나 개탄스럽고 그지없이 서글프다.
<황원갑(소설가ㆍ한국풍류사연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