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3일 방송위원회에 대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홈쇼핑 이민상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자리에서 한 국회의원은 이민상품 판매방송을 두고 “국민화합과 의로운 가치관 정립을 훼손하는 데 앞장선 것”이라고 질타했다. 국기문란이나 다름없는 병역의무 회피를 유도하는 차트를 보여주고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민상품을 팔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이 일이 있은 지 1주일 후인 29일 방송위 산하 상품판매방송심의위원회는 “판매회사측 의견진술을 들은 뒤 문제가 드러나면 해당 이민프로그램을 더이상 방송할 수 없도록 방송의 공적 책임과 방송윤리에 대한 위반책임을 물어 중징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방송 중 병역의무가 없어진다며 이민을 부추기는 한편 자녀 교육문제가 해결되고 낙원과 같은 자연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식의 과대ㆍ과장 표현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회의원이 호통을 치고 이에 한달이 넘도록 수수방관했던 방송위가 뒤늦게 이민상품 판매금지령을 내린다고 해서 모국을 등지고 싶은 현실이 갑자기 사라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이 말라간다고 병든 나무 한 그루를 쳐내겠다는 식이다.
대박이 나도 씁쓸하기만 한 이민상품 판매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을 회피하도록 유도한 것, 과대ㆍ과장 표현을 한 것은 홈쇼핑업체측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정책 입안자나 국가기관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과연 `빗나간 방송표현`일까. 병역회피를 우회적으로 유도하거나 이민 갈 곳이 지상낙원이란 과장된 표현을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문의전화가 빗발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방송을 보자마자 전화기를 들었던 국민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그런 마음을 먹게 만든 이 땅의 현실을 없애는 방법을 고심하는 게 그들이 할 일이다.
`나라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이 이 지경이 되도록 뭐했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평소 뜨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방송을 보자마자 손이 먼저 전화를 찾았다”며 “자식 키우는 게 두렵기만 한 이 현실에서 벗어만 난다면 어딘들 천국이 아니겠는가”고 말한 한 30대 회사원의 한숨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정영현기자(생활산업부) yhchung@sed.co.kr>